8년 만에 햇빛을 보게 된 ‘안기부 X파일’이 2005년 여름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고 있다.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언론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거꾸로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자본가의 정치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 언론인들은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우리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부분은 한때 자본과 결별했다고 공언했던 중앙일보의 최근 보도 행태다.
정치ㆍ경제ㆍ사회 권력의 감시를 통해 밝고 정의로운 사회의 실현에 동참했다는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과 독자 앞에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뼈를 깎는 반성을 다짐한다는 중앙일보의 구차한 변명은 1997년 대통령 선거이후 고초를 겪고 나서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쌓아온 자신들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다시 권력과 자본의 나팔수로 나선듯한 중앙일보 사설에서는 논리마저도 실종됐다.
중앙일보가 주장한 것처럼 1999년 불거진 ‘보광 탈세’사건과 1997년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어떤 논리로 인해 ‘일사부재리’ 원칙에 해당된다는 것인가. 홍석현 회장이 탈세사건으로 감옥까지 가서 고초를 겪은 것이, ‘X파일’에서 드러난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댓가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 앞에 독자와 언론인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8천여개의 도청 테이프 중 유독 특정 정치인과 기업, 그리고 중앙일보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문제를 삼고있는 현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많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특히 중앙일보가 “도청 당사자들은 중앙일보를 매도하고 있는 일부 방송 신문사들을 거명하며 그들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강조한 대목은 아직도 정ㆍ언 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사와 다르지 않다는 부끄러운 자기고백에 불과하다.
이러한 중앙의 모습은 일등을 너머 일류신문을 지향하던 당당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 수 없다.
한술 더 떠 “중앙일보를 의도적으로 매도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에 대해서는 결연히 맞서 싸울 것”이라는 용기(?)는 도대체 누구를 향한 도전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이러고도 한 시대를 청산하는 시대적 과업이라는 차원에서 진상 파악에 주력한다고 큰소리칠 수 있단 말인가.
권력과 자본 앞에서 해바라기처럼 굴신하는 모습이 중앙일보의 참모습이 아니기를 거듭 바란다.
중앙일보는 유착 고리를 끊은 것처럼 처신하다 이해관계를 고려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몸을 낮추는 비굴한 모습으로는 더 이상 독자 앞에 설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앙일보 기자들과 노조를 중심으로 이번 사태의 바람직한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젊은 기자들의 진정한 애사심이 모여 이제는 중앙일보가 권력과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참언론’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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