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공개 득보다 실 많다




  이호중 교수  
 
  ▲ 이호중 교수  
 
검찰 수중에 들어온 2백74개의 불법도청 테이프의 처리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X파일사건은 이미 내용이 공개된 삼성과 정치권력의 유착문제처럼 재벌의 횡포와 정경유착 등 권력형 비리와 범죄행위를 투명하게 파헤치고 권력형 비리와 야합을 척결할 수 있는 기회로서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러한 기회가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의 불법도청이라는 또 다른 권력형 범죄를 통하여 확보했다는 점이다. 테이프는 그 내용의 폭발력 못지않게 테이프의 존재 자체가 권력형 비리와 부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헌법상 강력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국민 개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생활의 비밀을 무참히 희생시킴으로써 얻어진 결과물이다.



도청 테이프의 내용의 공개문제는 다음의 세가지 차원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



첫째, 테이프의 내용의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공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도청테이프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개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합법적인 감청을 한 경우에도 그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물며 불법도청의 경우에 그 도청된 대화내용이 공개되어서는 안 됨은 명백하다. 아무리 내용공개의 공익적 필요성이 크다고 할지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위법성이 상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검찰이 테이프의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도청테이프의 내용에서 범죄행위와 관련된 단서를 발견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필요한 경우에 수사를 진행하는 경우이다. 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는 테이프의 대화내용이 부분적으로 공개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검찰은 실제 이러한 절차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앞으로의 절차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듯이, 불법도청테이프에는 엄청난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뇌물 등 범죄행위가 적잖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테이프에는 대화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내용도 상당부분 담겨 있을 것이다. 또 일견 범죄의 단서가 발견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신빙성있는 단서인가 여부도 분명하지 않다. 어떤 범죄는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것도 있고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테이프의 조작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도청테이프에 수록된 대화의 내용과 신빙성 등이 상당히 다양할 것이기에, 테이프로부터 범죄혐의를 시사해 주는 단서를 추출하는 작업은 2백74개의 테이프를 일일이 재생하여 듣고 꼼곰히 분석해야만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테이프의 대화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검찰에서는 소수의 수사 인력만 테이프에 접근하게 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테이프 내용을 외부로 유출하고자 하는 욕구에 검찰의 누군가가 사고를 칠(?) 가능성이 아니다. 필자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테이프의 내용을 듣고 수사의 단서를 발견하겠다는 검찰의 욕구 그 자체이다.



비록 그 테이프가 7∼8년 이상 지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테이프는 불법적으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검찰이 열열히 테이프를 재상하는 모습은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7∼8년 전의 과거로 회귀하여 직접 불법적인 도청을 자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테이프에 담긴 대화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테이프를 재생하여 듣는 것은 시차가 존재할 뿐 불법도청을 하는 행위와 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검찰의 이러한 절차진행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대화의 비밀을 보호하고자 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입법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앞으로 누군가가 타인의 대화를 불법적으로 도청하여 그 테이프를 검찰에 제공하면 검찰은 그 테이프를 정성껏 듣고 수사에 임할 것인지 묻고 싶다. 권력형비리와 범죄가 그 테이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테이프 공개의 미련을 가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하게 그 테이프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셋째, X파일 중 이미 언론을 통해 그 내용이 공개되어 버린 삼성-중앙일보-97년 대선후보 간의 불법과 비리의 커넥션은 사정이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다. 비록 도청테이프에 수록된 대화내용 그 자체는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가 될 수 없기는 하지만, 검찰은 검찰이 범죄혐의를 인지한 이상 적극적인 수사를 통하여 다른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도청테이프에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내용공개와 수사를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적인 도청테이프의 내용이 수사기관에서 재생·분석됨으로 인하여 헌법적 기본권인 프로이버시와 사생활의 비밀이 희생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크다는 생각이다. 권력형 비리와 부정을 파헤치는데 불법도청이 기여하는 사회는 인권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본란의 내용은 본보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기고자의 입장입니다. 이호중 외대 법대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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