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숙명처럼 기사를 쓴다

(특집/한국기자들 무슨 보람으로 사나)강춘진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




  강춘진 기자  
 
  ▲ 강춘진 기자  
 
덥다, 더워. 날씨만큼이나 신문기자 처지가 덥게 느껴진다. 종이신문의 위기시대, 기자로서 살아가면서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이제 희망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자주 반문해본다.



그래도 기사를 쓴다. 어쩌면 숙명처럼 기사를 쓴다. 선택한 일이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신문 만드는 일뿐이니까. 그렇지만 한번씩 밀려오는 허탈감은 어쩔 수 없이 불안감으로 변한다.



초등학교 3학년생인 큰 아들이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쓴 기사 어디 있어.” 순간 기분이 우쭐해졌다. 이 녀석, 드디어 철이 드는구나. 그러나 기쁨도 잠시 뿐이었다.



신문을 들고 아들에게 너무도 당당히 “아빠 기사 여기 있다”며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말을 던졌다.

“인터넷 어디를 찾으면 아빠 기사 있느냐고.”



정말 슬픈 순간이었다. 그토록 힘들여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 수많은 동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신문) 위의 활자에는 관심이 없는 것은 비단 내 자식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신문을 만든다. 편집국에 이런 전화가 온다. “기사 잘 봤습니다. 정말 시원합니다.”

그렇다. 아직도 신문을 보는 독자들은 많다. 반향이 큰 기사를 쓰고 독자들의 반응이 오는 순간, 신문기자의 보람은 절로 생긴다.



현장이 있어 좋다. 생생한 현장은 우리 삶의 전부다. 그 현장에서 쏟아지는 말들과 일들이 기사로 재구성되고 다음 날 아침 종이신문 위를 장식하는 활자로 되살아날 때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희망을 본다.



그래서 신문을 만든다. 언젠가 우리 자식들도 신문의 장점과 그 매력을 체득할 날이 올 것이다. 그 희망이 있어 좋다.



오늘도 신문을 만든다.

현장을 전달하고 분석하고, 때로는 어설프지만 대안까지 제시하려는 신문기사 때문에 우리는 살맛난다. 취재부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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