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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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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버나이스가 쓴 <여론을 밝힌다>라는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등장한다. 호텔의 명성을 높이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경영진들이 홍보 전문가에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단장한다든지, 훌륭한 요리사를 구한다든지 등을 예상하고 있던 호텔 경영진에게 홍보 전문가가 제시한 묘책은 호텔 개장 3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유지들이 참가한 화려한 연회가 개최되고, 언론이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호텔 측은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다분히 냉소적인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사회에서는 최대한의 가용자원을 활용하여 홍보하고, 이를 통해 여론의 흐름을 장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되었다.
정작 실체에 대한 확인이나 비판적 점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과 기법만이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점에서 최근 미디어업계와 관련 학회 그리고 언론이 함께하는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와 언론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과 사건들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논의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방송 분야, 특히 DMB와 IPTV 등 방송 통신 융합형 미디어 분야에서는 관련업계가 멍석을 깔면 학자와 전문가들이 가급적 낙관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이를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중계보도하는 식의 잘못된 어울림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 관련 학회와 여기에 필요한 제반 경비를 제공한 업계 사이에는 마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로맨스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미디어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업계 입장에서는 앞서의 호텔 사례처럼 생존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학회 소속 일부 학자들의 부적절한 처신과 언론의 비전문성에 있다.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의 특성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향후 예상되는 사회적·경제적 파급효과를 설명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펀드 확보에만 급급한 학회 운영의 난맥상과 단골 패널들의 업계 유착성 발언들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이를 엄정하게 감시해야 할 언론 역시 논의사항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일종의 공생관계 유지를 위해 토론회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에 자족하고 있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조직이나 기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학자와 전문가 집단을 대표하는 학회와 사회적 환경감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이 본연의 비판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현장을 주도하는 업계의 홍보창구로 변질되거나 단순 동정보도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사회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업계와 학계 그리고 언론이 지금까지 보여준 공생의 그늘에서 벗어나 상호 감시와 비판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긍정적인 관계로 환골탈태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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