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종로서적과 포털사이트




  변희재 런아시아넷 편집국장  
 
  ▲ 변희재 런아시아넷 편집국장  
 
1백년 전통을 자랑하던 종로서적이 폐점되었을 때, 출판인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출판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내앉는 처지로 몰릴 거라는 위기감이 고조되었고, 이는 매년 20여개의 서점이 문을 닫으며 점차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출판과 서점의 위기를 극복할 만한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한번 이렇게 상상해보자. 당장 내일이라도 종로서적을 개점하여, 전국에 있는 모든 책과 음반, 영화DVD 등을 무단으로 진열해 놓자. 더불어 명예훼손에 걸릴 법한 인신공격성 불온문건, 그리고 전 세계의 포르노물도 배치해두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료로 배포해보자. 아마도 종로서적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고, 서울시민들은 다들 책 한 권씩 들고 다니게 될 것이다. 아마도 언론들은 “다시 출판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며 자화자찬해댈 것이다.



그럼 수익은 어디서 얻는가? 종로서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광고전단지를 뿌리고, 벽 곳곳에 광고를 게재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상상은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현실이나 다름없다. 바로 뉴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모든 언론들의 향후 발전모델로 칭송받고 있는 포털의 영업방식이다.



포털이 언로를 장악한 뒤, 각 언론사 뉴미디어 담당자들은 한목소리로 포털과 언론과의 윈윈관계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전제로 이야기되어야할 포털의 두 가지 영업비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상상 속의 종로서적의 성공비결인, ‘무료’와 ‘위법’이다. 포털은 한달에 1만원, 한권에 3천원 정도 하는 유가 일간지와 주간지를 적게는 40여개, 많게는 80여개씩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각 블로그와 까페를 통해, 음원, 연예인 사진, 명예훼손 댓글 등등, 저작권, 초상권, 명예훼손 등 위법적 콘텐츠의 유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무료로 뉴스를 보고, 위법 콘텐츠를 마음껏 확보할 수 있는 포털에 독자가 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포털과 유가 언론사가 윈윈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 유력언론사의 독자배가운동을 담당하는 사람은 “포털과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가면 얼마든지 무료로 보는 당신들의 신문을 내가 왜 돈주고 사봐야 합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냥 웃기만 했다. 이는 언론 경영의 문제도 아니고 수학의 문제도 아니고 초등학교 산수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전 세계의 그 어떤 유력 언론사도 포털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론개혁진영이 조중동을 비판했던 산업적 이유는 무분별한 경품 제공으로 콘텐츠 경쟁보다는 유통경쟁을 유발하여 신문의 질을 떨어뜨리고, 광고수익비중을 과도하게 높였기 때문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뉴스의 질이 아니라 메일, 까페, 블로그 등 부대서비스의 네트워크를 통해 불법 콘텐츠로 독자를 끌어모으고, 수익 대부분을 광고로 채우는 포털은 조중동보다 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도대체 언론개혁을 외치던 진보적 학자들과 언론단체들은 어째서 이 점을 지적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포털의 언론 장악은 이미 대세”라느니 “포털과 함께 가야한다”느니 하는 검증되지 않는 가설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참고로 만약 미국이나 일본의 포털이 이렇게 영업했다가는 일찌감치 소송으로 문을 닫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매체를 돈주고 사보는 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거대한 무가지 포털에 뉴스공급을 중단하고, 그들의 불법영업을 철저히 감시해보라. 그렇게 해도 과연 포털이 지금처럼 권력을 누리고, 지면매체의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지기만 할까? 지금은 더 빨리 죽는 길로 서로 경쟁하며 달려가는 꼴이다. 변희재 런아시아넷 편집국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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