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협 르포] 한국일보 국제부 야근기자 24시
하루 평균 8백건 외신과 '고독한 싸움'
교열·기사 수정·자료 정리…저녁부터 새벽까지 눈 코 뜰새 없어
|
|
|
|
|
▲ 박상준 기자 |
|
|
한국일보 국제부 박상준 기자 밀착 취재
지구촌이 하나가 된 지금 더 이상 뉴스는 한 국가의 소식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외국의 정치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며, 미국의 다우지수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리크 게이트를 보면서 우리 언론의 취재원 보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바로 우리나라의 축구팀이 된 듯 하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세계의 뉴스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뉴스를 취사·선택해 우리의 안방으로 전달하는 이들이 바로 언론사 국제부 기자들이다. 따라서 국제부는 모두 잠든 시간에 수많은 해외 뉴스 속에서 시차와 싸워가는 직업이다.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한국일보 국제부의 야근 기자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2005년 10월 21일 오후 6시.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에 도착했다. 편집국엔 여전히 많은 기자들로 북적댔다. 취재 대상인 국제부 박상준 기자(3년차, 국제부 7개월 째)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6시가 조금 넘자 편집국으로 다음날 신문의 10판이 배달됐다. 그 때부터 박 기자는 오탈자 교열에 들어갔다. 교열부가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사라지면서 교열도 이젠 기자들이 직접 봐야하는 상황이다. 7시가 되자 임철순 편집국장을 비롯한 각 부 부장들이 회의에 들어갔다. 부장단 회의는 10판을 보면서 기사의 우선순위와 새로운 내용을 배정하는 지면회의다. 동시에 다른 편집국 기자들은 그 날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기사를 읽으면서 고치거나 새로운 기사를 취재하느라 바쁘다.
부장단 회의를 마친 유승우 국제부장은 박 기자에게 도쿄 특파원에게 전화해 도표와 기사의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며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다. 박 기자는 도쿄 특파원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본 뒤 자신이 직접 기사를 고치고 다듬었다. 박 기자는 “야근 기자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기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기자들과 특파원이 작성한 기사를 잘 다듬는 것도 중요한 업무”라며 도쿄 특파원의 기사를 이렇게도 고쳐보고 저렇게도 고쳐보는 등 마치 자신의 기사를 퇴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7시 반이 넘자 정상 출근했던 국제부 기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국제부에는 박상준 기자만이 남아 있었다. 박 기자는 계속해서 이리저리를 오갔다. 면을 들고 편집부에 가는 가하면 특파원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바쁜 일과를 처리했다.
이와 같은 업무는 다른 기자들이 다 퇴근한 9시 30분경인 30판이 마감될 때까지 계속됐다. 편집부는 판이 바뀔 때마다 국제면을 박 기자에게 전달했고, 박 기자는 야근 국장과 수시로 면의 구성과 기사의 대체, 사진의 위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 기자는 “다른 부도 마찬가지지만 30판이 마감되는 순간까지가 제일 바쁘다며 이 때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면의 교열을 하고 난 후 다른 뉴스거리를 찾는 일도 병행했다. 국제부 한켠에 자리 잡은 텔레비전에서는 CNN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고 각 통신사로부터 송고된 새로운 소식이 뜰 때마다 ‘긴급기사 알림이’가 요란하게 뉴스를 전달했다. 때르르릉! 때르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긴급기사 알림 벨은 AP, 로이터, AFP 등 한국일보와 계약한 통신사에서 실시간으로 전해오는 기사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벨이 울릴 때마다 박 기자는 모니터를 통해 내용을 확인했다. 한국일보 야근 기자가 접하는 각 국의 뉴스는 하루 평균 7백~8백 건. 이 중에서 제한된 지면에 오르는 뉴스는 채 10건도 안되기 때문에 그 만큼 뉴스를 선택하는 것은 내용에 대한 이해와 뉴스에 대한 감각 그리고 순발력이 필요한 일이다.
한국일보 국제부는 다른 언론사와 달리 야근 당직자는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6시에 퇴근하는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문사가 강판이 끝난 2시쯤 퇴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퇴근하는 날 하루 휴식을 취하고 익일 정상 출근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어떤 주는 같은 국제부 소속이지만 일주일 내내 서로 못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박 기자는 말했다.
자정이 지나 조금은 한가해진 박 기자에게 국제부에서 야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 생활 패턴이 잡히지 않아서 고생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 졌다”며 “그나마 예전에는 야근 기자가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과 악수하며 퇴근한 것에 비하면 퇴근이 빨라진 편”이라고 담담히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 아내가 만삭이어서 아내가 병원에 가는 날은 내 휴일과 맞추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국제부의 야근이 오히려 큰 도움”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새벽 2시가 넘어 신문의 강판이 나오자 다른 부에 있던 야근 기자들도 속속 퇴근을 했다. 넓은 편집국에 남아있는 사람은 5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 때부터 박 기자는 외국의 영자 주간지 및 전문지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기획물을 찾았다. 3시가 넘어서는 야근일지를 작성하고 영어로 된 자료를 해석하며 내일 인수자에게 전달할 기사를 준비했다. 특히 시차가 다른 지역은 이 시간에 뉴스가 많이 쏟아지는 시간대여서 다음날 오전 근무자에게 중요한 사항은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CNN에 귀를 기울이고, 컴퓨터 모니터를 주시하며 자료를 검색하느라 분주했다.
새벽 4시가 넘자 박 기자는 주위에 산만하게 흩어진 잡지와 신문을 정리했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박 기자는 강판이 끝난 이후 퇴근하지 않는 이유가 다음날 출근한 기자들이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해 기사의 취사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일보 국제부의 전통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러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아 모니터에 집중했다.
오전 6시. 박 기자는 퇴근 준비를 했다. 박 기자의 책상 위에는 밤 새 그가 정리해 놓은 자료가 보기 좋게 올려져 있었다. 국제부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기자는 “비록 내 바이라인으로 기사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밤 새워 가며 찾은 아이템이 내가 생각한 야마(주제)로 작성되는 것을 보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모든 이의 퇴근길이 그렇듯 사옥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대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