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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협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9회 JAK 1030 콜로키엄-기자 사망!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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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서울신문 조승진 기자, CBS 여동욱 기자, 내일신문 이강연 기자. 이유는 다 다르지만 불과 2달 사이에 3명의 기자들이 가족과 동료의 곁을 떠났다. 이들을 보내며 우리는 얼마나 슬퍼했는가?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누구 하나 이렇게 허망하게 가족과 동료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이다. 최근 기자들의 사망과 관련해 기자협회는 유족연금기금을 만들자는 취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와 관련해 현재 각 언론사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와 기자협회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유족을 돕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사회=이상기 회장
남봉우=내일신문 정당팀장
박재범=서울신문 편집부국장
이봉현=로이터통신사 한국어 뉴스부 선임기자
최승진=CBS 사회부 차장 기협지회장
사회=기자들이 현직에서 돌아가신 경우에 어떤 대책이 없어서 유족들과 동료 기자들에게 큰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기자 사망은 기자들 사기와 관련되기도 해서 기자 사망의 실태가 어떻고 언론사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실태와 언론사의 준비, 개인의 대비책,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를 해보겠습니다. 특히 이봉현 로이터통신 기자께서 외국사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선 최근 사망 원인과 경위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십시오.
최승진=저희 같은 경우 여동욱 기자가 지난 7월에 요로암 판정을 받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명과 사인은 암인데, 가족력이 없었습니다. 처음이에요. 대개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 회사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사망사고를 당한 경우는 여동욱 기자가 처음이었고, 병가를 한두 달 내서 쉰 사람도 일년에 한두 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하고 사망자까지 나왔는데 회사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되느냐, 산재처리가 되느냐에 대해서 제가 주의 깊게 생각하고 여러 방식으로 알아봤는데 현실적으로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원대책이 거의 없습니다. 저희들도 산재처리 됐을 때는 산재보험을 받기 때문에 사실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산재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경우가 암인데, 여기자는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는 거예요. 산재가 안되거니와 회사에서 지원할 법적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있는 동료, 선후배 기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도와주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마침 이 자리를 빌려 바로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산재가 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산재가 아닐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하고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느냐에 중점적으로 이 방안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여 기자의 경우 요로암이 발생한지 3개월 만에 사망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일신문은 최근 이강연 팀장이 돌아가셨는데 경위를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죠.
남봉우=10일 전에 일어난 일인데요, 저희가 주5일 근무여서 금요일은 각 팀마다 마무리 회의를 합니다. 이 팀장이 소속된 팀이 아마 회의를 하고 항상 술집에서 가볍게 한잔하면서 마무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잠깐 나갔는데 실족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족해서 뇌에 출혈이 있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졸지에 돌아가셔서 저희는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바로 15분 만에 병원에 옮겨 응급수술을 했는데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하루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회의 중이이었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것 같은데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서울신문의 박재범 부국장님께서도 조승진 기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박재범=조승진 기자가 지난 9월 6일 국방부에서 사망했습니다. 국방부는 다른 출입처하고 취재방식이나 영역 공간이 좀 다릅니다. 보통 조 기자는 아침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랬는데,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그 자리에 5분 만에 와서 사망했다는 1차 소견을 하고 그 다음에 용산 병원에서 사망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때를 보면 아침 6시에 나와서 일을 해서,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지만, 과로가 누적된 것 같습니다.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저희 회사에서는 약간의 위로금을 조금 준 정돕니다. 그 외에 이야기할 것은 아직도 사인을 잘 모르는 경우에 의사들은 심장마비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산재처리가 되려면 진단이 명확하게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확실히 매듭짓지 못한 상태입니다.
서울신문은 80년대 중반에도 근무중에 돌아가신 분이 있었고, 조 기자가 과로에 의해 사망한 두 번째라고 봅니다.
사회=출입처가 어디였죠?
최승진=여동욱 기자는 사망 당시에는 전국부를 출입했는데, 그 전에 청와대였습니다. 발병당시에 전국부였죠.
사회=일단 보면 업무로드가 많은 출입처를 맡았군요. 로이터 등의 외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재직중에 돌아가신 경우가 있나요?
이봉현=재직중에는 위험 지역을 취재하다가 총을 맞고 사망한 경우가 제일 많죠. 재난지역에서 사고 당한 경우는 많은데,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쓰러진 경우는 거의 못 들어봤습니다. 없지는 않겠지만 근래에 이런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국내 언론과 근무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 언론사보다는 적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외신 같은 경우는 위험지역을 취재하다가 사망한 경우가 많다는데 국내에서는 위험지역에서 사망한 경우가 있나요? 없었죠?
남봉우=없는 것 같습니다.
최승진=몇 년 전에 KBS에서 히말라야 오르다 사망한 경우가 있었죠.
박재범=그 전에는 KBS가 84~5년도에 취재 헬기가 떨어져서 여러 명이 죽었었죠. 년도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회=그런 경우가 국내에서도 종종 있었군요.
이봉현=있어요. 얼마 전 프랑스의 소요 사태 때 제다 듣기론 KBS나 동아일보 기자가 그 쪽에서 구타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나 동티모르에 특파원들을 보내는데 저도 갈 뻔 했습니다. 그게 굉장히 스트레스입니다. 민병대가 게릴라 수준으로 하다 보니까 집단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가기로 됐거든요. 그 말을 듣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굉장히 스트레스에요. 그런 일들이 사실은 어떤 분쟁지역이 있을 때 국제부나 사회부에 지명을 해서 보내잖아요. 조금 아까 말씀하신 것은 스트레스와 과로에 대한 업무적인 것이고 분쟁지역이나 위험지역은 구분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분쟁이나 위험 지역을 취재할 때 사전 교육과 대비가 있고, 충분한 보상시스템이 있느냐도 다른 주제로 이야기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각 언론사에서는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이야기 해 보도록 하죠. 대안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재범=그거는 정확한 것은 기획부장이 잘 아는데, 잘 모릅니다. 제가 듣기로는 회사에서 몇 년 전 노조와 협의해 과로에 의한 사망의 경우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위로금을 주는 규정을 신설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이 그 규정을 만들고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인데, 액수는 잘 모릅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고 그래서 다른 사원들이 모금을 해 유가족들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이 현재로선 산재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아닌가 합니다. 회사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최승진=여동욱 기자가 사망하면서 사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지원 문제였어요. 회사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있느냐에 대해 제가 사장님과 실무자를 만나봤는데, 회사에서 산재가 아닐 때 줄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우리 달력상에 보면 위로금을 본봉에 4백%정도만 줍니다. 이를 테면 월봉이 3백만 원이면 1천2백만 원 정도 밖에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회사에서 각 기자들을 상대로 해서 상해보험을 들어놓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병 진단 받았을 때 1천만 원 주고 사망했을 때 1천만 원 주는 것이 전부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재정적인 부담이 돼서 1억짜리 보험이 있지만 그것에 가입하지 못합니다. 2천만 원짜리 보험은 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 진단 받았을 때 1천만 원을 받고, 진단 후 사망 했을 때 1천만 원 받습니다. 이게 회사에서 준 것으로는 다였고, 개별적으로 하기에는 이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여러 방식을 통해 협조를 통해서 노조에 복지기금을 1천만 원 정도 지원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또 CBS 지회에서 월급의 2%씩 몇 달 동안 갹출해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것이 사망 선고를 받고 난 뒤에 여 기자가 사망하기 전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명예퇴직을 시켰습니다. 명예퇴직을 하면 2년 정도의 월급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편법을 썼습니다.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래서 퇴직금에 2년 치 월급을 그렇게나마 지원했습니다. 그것은 사측이 협조를 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약에 근거가 있고 지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었으면 그럴 필요 없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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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봉현 로이터통신사 기자, 남봉우 내일신문 정당팀장, 최승진 CBS 사회부 차장, 박재범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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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우=이강연 팀장이 돌아가신 지가 겨우 10밖에 안됐습니다. 저희의 경우 10년 전 현업에 있던 분이 대전에서 회의하고 올라와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목뼈가 부러졌죠. 그 후 전 직원 1억 원짜리 상해보험을 들어 놨습니다. 회사 다닐 때 사망하거나 상해를 당하면 나오는 것이고 퇴직하면 안나옵니다. 한달에 1인당 3만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고요. 전부 회사에서 부담합니다. 사망했을 경우 1억을 줍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됐습니다.
그 다음에 아직까지 확정은 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이 남아있는 가족들과 애들에 대한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사회를 거쳐서 이익금 중의 일부를 장학기금으로 출연을 해서 애들 학자금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간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12월 이사회에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사회=내일신문의 경우 상해를 입었을 때를 대비해 고액의 보험을 들어놓은 것이 특이합니다. 이익금을 유가족에 지급하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것 같아서 진일보했다고 봅니다. 로이터 같은 경우는 어떤 규정이 있습니까?
이봉현=네. 있습니다. 업무상 질병이나 사고사, 출퇴근 때 당하는 사고까지 포함해 치료비 등은 전액 회사에서 보상하고요, 저희 역시 보험을 들어서 사망의 경우에는 연봉의 4배를 보상을 해주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위험 지역에서 취재하다가 사망하면 연봉의 7배를 나중에 유족에게 지급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사회=부상은 어떻습니까?
이봉현=부상의 경우 2개의 팔다리나 눈을 잃었을 경우에도 역시 사망에 준하는 규정을 적용합니다. 한 쪽 눈을 잃었다면 조금 낮습니다. 영구 장애를 입었을 경우 연봉의 10배에 해당하는 보상을 해 주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종의 보험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회=부럽네요. 우리도 이런 토론을 통해서 몰라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을 알아가야 합니다. 재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것을 이런 자리를 통해서 그런 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박재범=저희도 조승진 기자의 경우 사망 후 차장급에서 부장으로 올렸습니다. 상향시켰죠. 그리고 자녀에 대해서는 대학교 교육까지는 학자금을 회사에서 지원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까지인지 졸업할 때까지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요. 그런 지원을 사측에서 마련했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서울신문만 해도 오래된 전통이 있어서 잘 돼 있네요.
최승진=유가족들 문제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유가족의 경우 사망 했을 때 위로금을 얼마나 주느냐보다는 아이들이 2명 정도씩 남아있는데, 현실적으로 국내 언론사 중에서 유가족 챙겨주는 곳이 거의 없어요. 제가 몇 군데 지회장들과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그런데 산재의 경우는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산재 판정을 받으면 자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 질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자녀를 책임지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바로 이부분이 앞으로 기자협회나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그런 이야기는 대책 부분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보겠습니다. 지금 이강연 팀장의 유족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남봉우=이강연 기자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과 연년생으로 유치원에 다닌다고 합니다. 부인은 작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 관찰 기간입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여서 부인이 안정이 되면 우리 신문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볼까 합니다. 아직 결정 된 것이 없지만 일을 하도록 해서 보장은 보장이고 생계 자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또 이 팀장의 부모님도 다 살아계시는데, 어머니도 환자고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셔서 하는 일이 없습니다. 상당히 갑갑한 상황이죠.
박재범=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메이저로 분류되는 언론사는 가정이 유복하고 그런 쪽이 아무래도 많아요. 하지만 마이너에 근무하는 기자들은 썩 유복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조 기자는 3녀 1남이고 고인이 43에 돌아가셨는데 부모님도 연로하십니다. 독자라서 조 기자가 모셨는데, 더구나 아내는 전업주부입니다. 애는 또 어리고 그래서 가슴이 아픕니다. 동료 기자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봤을 때 자기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깝더라고요. 또 조 기자가 가정에서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회=그러면 대체 보완할 부분은 어디가 있을까요? CBS의 경우 제가 3분 다 생전에 현장에서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병원에 가 봤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었더라고요. 표정도 밝고 출입처에서 인정을 받던 분들입니다. 제가 오히려 시큰거리는데요. 보완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CBS의 경우 산재처리 받지 못하면 무대책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승진=기본적으로 산재가 산재처리가 안됐을 경우 저희가 지원하는 것이 대개 개인적인 정에 의해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후배, 동료였기 때문에 도와줘야지 하면서 돈을 모으고 회사에 요구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져요. 한달 두달 지나가버리면 ‘상조회 결성하기로 했다’, ‘장학회 만들기로 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사실상 시간이 지나가면서 참여율이 떨어집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각사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산재가 아닌 경우 지원할 수 있는 경우나, 유가족의 경우 직장을 보장해 준다든지 자녀에 대해서는 적어도 한 명은 대학을 마칠 수 있도록 학자금을 지원하든지 복지측면에서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기자협회차원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기자들이 참 많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재정 상태가 좋은 곳은 뒷받침이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한국기자협회이름으로 보험을 만들어 기협회원들 중심으로 조금은 돈을 내고 언론재단이나 이런 데서 돈을 유치해서 절반씩 내도록해 기금을 조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일 누가 사망을 했을 때 여기서 도와줄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봉우=회사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요, 기협 차원에서 보험을 유치하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좋은 의견 같아요.
이봉현=저도 말씀하신 제도화에 동감하는데, 저 역시 국내 언론에 있었고 현재는 외신에 있으면서 비교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국내언론을 보면 제도화가 아직은 잘 안돼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을 대비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말하면 기자들은 항상 과로사에 노출돼 있거든요. 일과 휴식이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생활을 하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휴식이 정말 필요하다 느끼고 회사도 그런 면을 고려해 보장된 휴가를 반드시 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이나 사망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사후의 보장하는 제도도 중요합니다만 이런 부분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인들을 보면 일주일에 한번도 집에 가지 못한 경우가 있거든요. 저희는 의무적으로 자기 휴가를 다 씁니다. 업무시간도 정해서 지키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서 조금씩 다듬어진 측면이 있고요, 그런 면에서 조금씩 우린 언론에서 과로사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이죠.
사회=과로사가 주로 업무과다와 스트레스 때문인데, 어떻습니까? 스트레스의 정도가 예전에 비해 더 늘어났습니까? 선?후배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박재범=스트레스 정도는 기자 때와, 부장 때, 그리고 지금 부국장 때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자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커피 같은 것을 하루에 10잔씩 마셨죠. 그런 것이 몸에 피로를 불러오기도 했고요. 부장 때는 평기자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더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아무튼 기자라는 직업은 과로가 따라 다닐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서 아까 말하신 휴가를 강제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같은 경우는 주5일이 되면서 의무적으로 휴가를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쁜 출입처에 나가 있는 기자들은 쉬라고 해도 이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들=못 쉬죠.) 회사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안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해야 되는데, 그런 부담을 주기 싫어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자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야 하는데, 시일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으로 보고 회사의 크기라든지 재정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채널이라고 한다면 아직 매듭짓지 못했지만 이번 건을 산재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니까, 산재처리 되려면 사망 원인이 명확해야 하는데 기자의 경우 과로사의 경우가 많아서 진단명이 심장마비나 심근경색으로 나옵니다. 명확하지 않으니까 산재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노동부나 산재위원회에서 회피를 합니다. 산재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부정의 소지가 많다고 해서 감사원 감사의 타깃이 됩니다. 아무래도 직원들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병명을 요구한다고요. 그리고 의사들도 자기에게 책임소재가 돌아와 무조건 심장마비라고 써버리고 맙니다. 지금 조 기자가 부닥쳐 있는 경우가 그런 상황입니다. 의사들을 설득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굉장히 근무형태가 다르고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등 업무로드가 있는 직업입니다. 공익을 위해 개인이 헌신하는 것으로 본다면 산재처리에 있어서 다른 직종에 비해 보는 기준 자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냐는 생각을 합니다. 기자들의 경우는 포괄적으로나마 과로라고 하더라도 노동부의 산재보상위원회 등에서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준을 정하는 사람만 경직되는 것이 아니라 뒤에 감시하는 단체도 있어서 그들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파악해서 기자들의 특성을 설명하고 거기에 따른 인정을 받는 노력을 기자협회 차원에서 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봉우=스트레스는 다 비슷할 겁니다. 이강연 기자의 경우는 출입처기 있는 팀장이었습니다. 저희는 옛날 데스크 제도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팀제로 하면서 팀장이 출입처에 나가고 그렇습니다. 팀장이 자기 조건에 따라 여유 있게 할 수 있고, 아니면 치열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강연 팀장은 거의 일중독 스타일이었습니다. 금요일은 확 풀어지는 날이잖아요. 이 회의 이후에 쉰다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겠죠.
지난 4월에 MBC 정 모 기자가 교통사고 나서 사망했습니다. 그 기자가 산재처리 됐는데, 그 때 산재 적용이 어떻게 됐냐면 ‘기자는 24시간 근무하는 직업이다’는 것이 적용된 것 같습니다. 조금만 근거를 가지면 산재가 될 것이라 보고요, 기협에서 도와주면 더 좋겠죠.
사회=협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최승진=기자들이 과로사와 사고사 그리고 병사에 노출되는 정도가 지금 갈수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희 CBS만 하더라도 노컷뉴스도 있고, DMB도 있고 또 TV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92년 초에 입사를 했는데 그 때보다 일의 강도가 3배 정도 강해진 것 같아요. 아마 저희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이기 때문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그런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직업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좀더 과로사의 기준을 다른 업종과 동일하게 하는 것보다 나름대로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알려서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특혜가 되면 안됩니다. 단지 우리의 특성을 제대로 알리고 도움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사회=제 작년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왔을 때 그 분이 ‘화(Anger)’라는 책을 썼잖아요. 기자회견에서 제가 질문을 했어요. 그 분에게 기자들이 스트레스 많다고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씀은 “기자가 화가 난 상태에서 글을 쓰면 독자나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화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분은 명상과 산책을 강조했는데, 사실은 스트레스를 선?후배들에게 서로 안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야단쳐도 풀어주면 스트레스가 별로 쌓이지 않거든요.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그러면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박재범=세상 사람들이 그렇잖습니까? 세상물정을 제일 모르는 3종류의 직종이 있는데, 군인, 공무원, 기자라는 말이 있어요. 특히 기자는 똑똑한 척은 제일 많이 하는데, 실제로는 제일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도 보험에 가입하고 그런 것이 몇 년 전에 아내가 거의 강제적으로 들었습니다. 저는 건강한데 뭐하러 하냐고 했죠. 그러면서 처음으로 보험직원에게 설명을 들어보니까 상당히 후회를 했어요. 나이가 젊을수록 보험료가 저렴하더군요. 저는 그것을 처음 알아서 20대 젊었을 때 가입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몰라서 못 든 거죠. 요즘 저는 가급적이면 후배들에게 빨리 보험 들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젊은 기자들은 싫어하더라고요. 40살 넘어 보험 들려면 20~30만원 넣어야 하는데, 지금 20~30대에 보험을 들면 10만 원대에 합니다. 어느 것이 이익입니까? 설명을 해 줍니다. 그런 것의 필요성을 기자협회보를 통해 자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회사원들이 회사가 챙겨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준비는 개인도 해야 합니다. 기자들이라는 직업이 자기일 하다가 바쁘면 개인적인 일은 잊어버립니다. 선배들의 이야기 형태로 기자협회보에 코너마련해서 “보험 빨리 가입하는 것이 좋더라”는 식으로 전해야 합니다.
남봉우=기자협회에서 보험회사랑 제휴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
사회=96년인가 한번 했어요.
남봉우=이번에 한 번 더 하시죠? 이강연 팀장의 경우 개인적으로 보험을 들어 놨더라고요. 이 사건들이 경종이 돼서 많이들 보험을 가입하면 좋겠습니다.
옛날 친구가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하나 하라고 하더라고요. 제일 작게 해서 저도 보험을 들었는데, 8~9년 됐습니다. 또 다른 거랑 중복돼서 해약하려고 했는데 사건들이 터져서 이번에 해약안합니다. 마음이 바뀌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난 번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에 대해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1년에 5만원 자동이체해서 애들 대학교 들어갈 때 까지 모아서 적립을 해 주자고 했어요. 30~40명이 내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정도 됩니다. 한 10년 정도 모으면 한달에 5천 원씩 자동이체를 시켰습니다. 대학교 들어갈 때 1천만 원 정도라도 해주자고 했습니다. 그 분이 사망하고 나서 책을 하나 냈는데, 이강연 팀장도 우리 내부에서 책을 내려고 합니다. 그냥 할 수는 없으니까 일반 기업체에서 지원할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몇 군데 접촉을 했더니 책을 유가로 하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족들한테 자랑스럽게 이 팀장이 이렇게 살다가 갔다는 것을 남기고 경제적으로 작지만 지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좋은 일입니다. 결국 기자들 사기하고 관련된 문제 아닙니까? 돌아가신 분의 유족들에게는 생계라든지 생활, 자부심이 되고 동료 기자들에게는 사기고 소속감이며, 유대감과 연대감인데 책을 낸다고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남봉우=기자협회에서 3년 전인가 창립기념식 때 유가족들에게 장학금을 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장학금이 얼마 될지 모르지만 돈의 문제를 떠나서 제가 볼 때 가족들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동료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기협에서 상패라도 애들에게 만들어 주면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게 기협에서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회=좋습니다. 공로패나 감사패를 만들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중요한 문제 지적해 주셨습니다.
최승진=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부러운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여동욱 기자는 보험을 3개 들어놨어요. 그런데 사망하기 직전에 목동에 아파트사려고 다 해약해버렸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안 되려면 끝까지 안 되나 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보험 혜택을 받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저도 이번 건을 계기로 보험을 해약하면 안 되고, 하나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들 정돕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가면서 소문이라도 내면 기자들도 보험에 관심을 가질 거예요.
이봉현=여동욱 기자는 스스로 아파서 병원을 갔나요? 아님 회사 건강검진을 통해 암이 발견됐나요?
최승진=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회사 건강검진이라는 것이 대개 피상적으로 많이 하니까 그렇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이상한 거예요. 병원에서도 조직검사를 하고 암이다 아니다 헷갈린 거예요. 결국 요로암이 됐는데 어렸을 때 탯줄이 남아서 암이 된 희한한 병입니다. 나중에 그게 암이라고 해서 주변 임파선을 떼어냈는데 항암치료를 받느냐 여부로 일산 암센터에 가니까 이미 전신에 다 퍼져버린 겁니다. 불과 한달 사이에. 간암 말기가 돼버리고, 골수암이 돼버렸습니다. 결국 암을 발견한지 3달 만에 사망해버린 거죠.
이봉현=회사 건강검진이야기를 하면 저희 회사도 일상적으로 하는 항목에만 했던 작년보다 더 강화했습니다. 노조와 협의한 것이 1년에 한번이 아니라 2년에 한번 하도록 횟수를 줄이는 대신 항목을 굉장히 세밀한 것까지 해서 단협을 했습니다. 그게 조금 더 질병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에 한번이지만 자신이 직접 개인적으로 검사를 하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건강검진은 형식적이죠.
사회=올해가 홀수 해잖아요. 2005년이니까. 홀수 해에 태어난 사람은 국민건강보험에서 40세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무료로 해줍니다. 건강검증은 어떻게 보면 의무입니다. 귀찮아서 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에서 주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결국 조직원으로서 건강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죠. 그래서 기자들이 좀 귀찮더라도 반드시 받도록 해야 합니다.
최승진=저희 회사에서는 이번 큰 사고가 있고 그러니까 건강검진 다 받더라고요. 수면내시경으로 샅샅이 다 뒤지고 했습니다. 그런데 건강검진 항목이 얼마 안돼요. 피검사, 초음파 간단히 하는데, 이걸로는 암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회사로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되니까 될 수 있으면 좀 싼 곳에서 단체로 하는 식입니다.
남봉우=저희 같은 경우는 정밀검사를 하면 좋겠다고 하면 회사에서 비용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인원이 적으니까 가능한 것이긴 합니다.
사회=내일신문은 내일을 많이 준비하고 있으시네요. 이 정도면 사고나 사망, 질병에 관한 것은 정리될 것 같습니다. 이젠 아까 이야기했던 위험지역에서 취재할 경우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이게 꼭 국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구 지하철 사고라든지, 폭발사고 지역에서 취재할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진단을 해보고 그 다음에 선진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죠. 최근에 위험지역에서 사고나 부상당한 사례가 있었나요?
남봉우=우리 이강연 팀장이 돌아가시기 2주일 전에 송파구와 같이 해서 석촌호수를 깨끗이 하자는 일이 있었어요. 우리 팀장 중에 스킨 스쿠버 하시는 분이 있는데 UDT 출신이기도 하고요. 그 분이 치우겠다고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롯데월드 배가 지나가면서 머리를 처서 아슬아슬했어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더라고요.
사회=언젠지 잘 모르겠지만 94년인가 95년에 SBS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헬기타고 가다 PD인지 기자인지가 죽은 일이 있었죠.
이봉현=요즘 시위를 그렇게 과격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의 대학 다닐 때는 돌이 날아다니는 시위를 했었어요. 저 같은 경우 사회부에 있을 때 맨몸으로 시위 현장에 갔다가 돌을 이마에 맞았던 일도 있었어요.
전쟁이나 분쟁지역에 취재를 갈 경우에는 사전에 교육을 많이 받고 가야 되고 대응책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알기에는 인력이 여유가 있으면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의 위험이 항상 있는 거죠.
사회=우리 같은 경우 포토라인은 있지만 취재라인이라고 하나요? 그런 것은 없잖아요. 우리가 만약에 그것을 어겨서 들어갔을 경우에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사실 다툼의 여지도 나중에 있을 거란 말이죠. 회사에서 누가 거기를 가라고 했냐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기자의 경우 좀더 사건 현장에 다가가는 게 기자로서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박재범=대개 기자협회에서 사진상 받는 것이 그런 것을 어겨서 받잖아요. (하하하) 제 기억으로는 한참 전에 기협에서 해외로 가는 위험한 취재의 경우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위험한 곳에 갈 경우 보험에 반드시 가입하고 가는 관행들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해외에 취재를 가게 되면 예고가 되잖아요. 하루라든가 일주일이라든가 준비할 시간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폭발지역이랄지 탈영병이 총기를 들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경우에 대한 대책이 없습니다. 무방비 상태죠. 만약 어떤 사고가 생겼을 때 보험사도 사전계약을 하는 보험 상품이 없습니다. 애매한 상황이죠.
사회=보험사에서는 어쨌든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 시키려다 보니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탈주범 사건 때 있었잖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유명한 지강헌 사건이 있었는데, 그 때 총을 쐈는데 결국 빗나갔어요. 그 때 기자들이 담에 붙어있었는데 누구든지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경우도 있었죠.
박재범=저의 경우는 85년경에 관악산 쪽에서 탈영병 사건이 나서 취재를 간 적이 있었어요. 그 때 탈영병들이 여관 위에서 밑으로 자동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그랬습니다. 거기 옆에 둔덕이 있어서 거기서 봤습니다. 사실 기자로서 그 상황을 안봐도 되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게 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둔덕 위로 갔는데, 탈영병이 난사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준사격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서 거기서 떠나 건물 귀퉁이로 갔어요. 내가 떠나니까 어떤 시민이 경찰이 막고 있는 것을 피해서 그 쪽으로 오더라고요. 둔덕으로. 내가 보면서 참 무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땅” 소리와 함께 냇가로 데굴데굴 구르더라고요. 그 다음날 보니까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제가 당구장으로 올라가서 전화를 하니까 회사선배들이 “야! 기사보다도 너 조심해라”, “너 다치면 큰일이다”고 걱정하는 것 밖에 이야기할 수가 없었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이 좀 지나니까 “기사 빨리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모두들=하하하) 재미있는 사례인데 위험지역에 가는 상황일 때는 어떤 경우든지 거기에 대한 대응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별 사별로 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경각심을 불어 넣는다는 점에서 협회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면 조금 더 빨라지지 않을까 하네요.
이봉현=개인이 판단해서 ‘이건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차원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미리 사전 교육을 받게 한다든지 거기에 따른 행동 수칙 등을 문서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지역에 갈 때 장비를 구비해 놓아야 합니다. 안 들고 나가더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예를 들어 외신사의 경우 대부분 방탄조끼를 사람 수 대로 준비를 해 놓습니다. 방독면도 사람 수 대로 준비해 놉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기분이 다른 거죠. 안 들고 나가면 자기책임이라고 하더라도 준비를 해 놔야 한다고 봅니다. 저희 로이터는 위험지역에 갈 때 행동수칙이 있어요. 전 세계 14개사가 연합해서 지침을 만들었습니다. 하다못해 엘리베이터 탈 때의 수칙도 규정돼 있습니다.
사회=참 좋네요. 그렇다면 그걸 정리해서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박재범=보충해서 말씀드리면 요즘 수습기자 선발하면 사별로 교육합니다. 또 언론재단에서 수습교육 시키기도 하는데 요즘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몇 년 전에 교육 프로그램을 보고 동의 하냐고 하기에 대충 동의 했습니다. 그게 제가 83년에 받았던 과정과 비슷하더라고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랄지 머 이런 것만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빼버리고 그런 것은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니까요. 교육에서는 위험할 때 취할 수 있는 행동수칙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최초에 들은 것은 각인이 되니까요. 나이 들어서 들으면 별로 남지 않죠. 언론재단에 이런 것을 교육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승진=국내에서는 이런 사례들이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거의 없는데, 로이터 통신의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삼풍 사고라든지 성수대교 사고 현장은 잘 알지만 항상 가까이 가서 인터뷰만 하려고 했지 그 때 모자 하나 썼던 것이 다였거든요. 지금 로이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부럽네요.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고 안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부분을 기자협회보 등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봉우=우리나라가 사실 제도화가 안 돼 있는데, 벤치마킹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오늘 굉장히 소중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기자들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별로 생각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외국의 사례 등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리가 도입할 수 있는 부분은 규정으로 만들 수 있도록 기자협회 차원에서 노력하겠습니다. 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기자협회에서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에게 공로패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각 지회에서 추모사나 돌아가신 분들이 쓰신 기사를 적어서 보내주시면 한국기자협회 회원 일동으로 공로패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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