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 관련 의혹을 취재한 MBC PD수첩의 비윤리적인 취재 방식이 드러나면서 MBC와 PD수첩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PD수첩이 추구하는 진실이 제 아무리 거룩할지라도 그 진실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직업윤리를 짓밟았다면 그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비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PD저널리즘’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PD저널리즘’은 취재의 기본이 안된 저널리즘 형태라느니 여론조작과 대중선동의 저널리즘이라느니 하는 비난들이다. 그런데 ‘PD저널리즘’이 실제로 그렇게 문제투성이에 백해무익한 것일까? ‘PD저널리즘’에 대한 이성적 접근이 아쉬운 대목이다.
KBS의 ‘추적 60분’, MBC의 ‘PD수첩’,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로 대표되는 ‘PD저널리즘’은 그동안 선정적인 소재를 선택하고 공격적 취재 행태를 구사한다는 점, 그리고 게이트키핑이 부실하다는 점 등에서 구설수에 오르곤 했지만 주류 저널리스트들이 꺼려하는 영역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일정한 성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
종교 문제는 주류 저널리즘에서는 여전히 성역에 속하지만 ‘PD저널리즘’에서는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삼성 문제를 철저하게 파헤쳐 공론화한 공도 상당 부분 ‘PD저널리즘’에게 돌아가야 한다. 또한 미국 문제, 친일파 문제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는 데 ‘PD저널리즘’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았다. 즉, ‘PD저널리즘’이 금기와 성역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저널리즘의 지평을 한 차원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방송진흥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PD저널리즘’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인권·복지 분야였다고 한다. 주류 저널리즘이 출입처 취재 관행에 얽매어 이른바 ‘공급된’ 기사에 만족할 때 심층 취재를 주무기로 하는 ‘PD저널리즘’이 사회적 약자의 눈물에 주목하고 엘리트 계층의 부패를 폭로하며 공존을 위한 사회 시스템을 모색해왔다는 점은 그것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신문사 편집국에서 행해지는 게이트키핑을 ‘정상’이라고 전제한 채 ‘PD저널리즘’에 게이트키핑이 부재하다고 비난한다면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 주장일 수 있다. 혹시 사주나 간부의 뜻에 따라 기사가 들어가고 빠지고,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정상적 게이트키핑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게이트키핑은 언론 자유를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매일 빠른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편집국에서의 게이트키핑과 제작자의 창의력이 중요한 중장기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게이트키핑이 똑같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억지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PD수첩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PD저널리즘’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자기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대의에 집착해 취재 윤리를 거추장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주류 언론이 확립해놓은 객관주의 보도 양식을 무턱대고 무시해오지는 않았는지, 시청률에 지나치게 연연하거나 자의적 편집 관행은 없었는지, ‘PD저널리즘’에 걸 맞는 게이트키핑 모형을 확립하는 데 얼마나 애썼는지 등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발전적인 답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기자든 PD든 지금 할 일은 ‘PD저널리즘’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옹호하는 게 아니라 ‘PD저널리즘’의 성과와 한계를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그런 평가 위에서 양측이 추구하는 저널리즘 적 가치를 보다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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