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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회 콜로키엄 개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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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가나다 순)
백선기=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차기 방송학회 회장
변희재= 런아시아넷 편집장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
한균태=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차기 언론학회 회장
사회=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사회= 주지하신 것처럼 2005년 언론계 큰 사건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기본적인 사실을 이야기하고 보도태도를 말해보겠습니다.
설원태= 사실 신문과 방송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언론계 10대뉴스가 진행중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참고해서 몇 가지 뽑아봤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것으로써 황우석 교수의 연구와 관련된 보도가 있고요, 이와 관련해서 MBC PD수첩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문제는 전반적으로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X파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와 경제 등을 망라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무료신문 ‘유티피플’이 시작됐다가 중단된 사건도 있었고, 신문사의 가판 폐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선출직선제에서 임명동의제로 바꿔 첫 여성 편집국장이 됐습니다. 또 WAN대회가 개최됐고 신문사 대부분이 주 5일제 근무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MBC에서 ‘상주참사’가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어제(12월 21일) 언론재단에서 설명회가 있었는데요 앞으로 아쿠아 사업단이 출범합니다. 뉴스 저작권에 대한 것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나가겠습니다.
백선기= 방금 말씀하신 가운데 황우석 교수 관련한 보도도 있고 한일양국언론보도, X파일 보도 등이 전반적으로 2005년의 가장 큰 사건들이었습니다. 보도가 지니는 근본 원칙이 굉장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쟁점이 되기도 하고 우리가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보도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황우석 교수에 관련된 보도는 제가 지금 연구하고 있고, 그 다음에 한일양국과 관련된 보도와 X파일 보도는 기자들의 윤리가 알권리라는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기자들이 일할 때 힘을 주는 권리인데, 알권리가 과연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취재하는 알권리인지가 의문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질적으로 기자들이 취재할 때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논리로서 수용자의 알권리를 말하는데, 그 알권리 때문에 수용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거든요. 그래서 알권리라고 하는 것에 대한 근본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또 취재할 때의 사실과 사실성 보도의 차이를 알아봐야 합니다. 지금 황 교수에 대한 보도의 맹점은 보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발설자의 폭로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언론이 나름대로 중간에 걸러서 내부 논의를 통해 게재여부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검토가 없이 말하는 것을 기사거리로 생각해 내보내다 보니까 한참 지나서 무엇을 내보내는지 조차 언론이 구조를 잡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폭로저널리즘’의 전형성을 띄고 있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저널리즘입니다. 지금 황우석 교수 관련 보도도 신문․방송 모두 진단하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국민들이 힘들어합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언론보도의 근본은 알권리라고 하면서도 그 알권리가 폭로성을 띄게 되면 폭로저널리즘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아니면 방송.신문 공히 어떤 사안이 있을 때 자체적으로 걸러 가면서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한 이후에 내보내는 것이 맞지 않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이외에 객관성의 문제, 균형성의 문제, 공정성의 문제 등이 거론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우리사회가 특히 황우석 교수와 관련해서는 전체가 폭로 보도에 휘둘려서 나라 전체가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언론이 실제로 사건이 된다고 해서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차제에 조금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폭로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있나요?
한균태=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중지로서 사업하는데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폭로저널리즘입니다. 사생활을 까발려서 흥미나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폭로저널리즘인데, 이제는 그것이 저널리즘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장점이라는 것은 백 교수 말씀처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어떤 공인이라든지 국가기밀을 국민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어떻게 보면 많이 알린다는 것이죠. 그런데 좀더 깊숙이 들어가면 누구를 위해서 알리느냐가 아니라 신문을 판매하는 목표로 알리는 것이 돼 문제가 되면서 미국에서도 1948년 허친슨 위원회가 구성이 됐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업신문들의 폐단 등을 강조해서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제시했었죠.
그것이 갖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이 너무 이용을 하면서 문제가 됐습니다. 백 교수 말처럼 언론이 사회에서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필터링과 프레이밍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결국은 여과라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어떤 것을 알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건전한 시각을 제공해서 틀을 잡을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한 기능인 것이죠. 물론 시간에 쫓기다 보니 폭로성 기사를 내보내는데 일단은 취합을 해서 게재여부를 좀더 여과할 수 있는 기능들을 해 줬어야 하는데 X파일도 마찬가지이고 최근의 황우석 교수 문제나 독도문제, 중국 역사문제 등이 ‘냄비저널리즘’으로 변질돼 버렸죠. 금세 식어버렸습니다. 꾸준히 시간을 가지고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를 내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자의 전문성문제로 귀착될 수 있죠.
변희재= 저는 인터넷이나 대중문화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이슈를 뽑고 싶은데요, X파일사건이 삼성‘X파일’사건이 뒤에 터져서 잊혀져 버렸는데, 1월에 연예인 X파일 사건 같은 경우가 인터넷 미디어하고 대중문화 미디어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스포츠 신문 기자들과 연예 리포터들이 취재해서 얻은 정보를 사실상 특정 기업에게 제공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에 연예인이라는 취재원과 대중문화 기자의 관계가 상당히 역전됐습니다.
한마디로 취재원들이 기자들을 아예 신뢰하지 않게 돼버린 것이죠. 그 뒤에 급격히 변화된 현상들이 연예기획사에서 해외 공연을 많이 가는데, 기자들을 선별해서 자기에게 1백% 유리한 기사 쓸 기자들만 선별해서 실상 사전심사해서 데려가는 정도로 역전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와 더불어 스포츠지의 위기가 더욱 심화돼서 하반기에는 더욱 힘겨워하는 상황입니다.
그 반면에 연예인 X파일 사건에서 실체가 드러난 것이 있는데 포털의 위력이 현실화 돼버린 것입니다. 연예인 X파일을 3천만 명이 다운로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사결과 90%이상이 포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했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포털이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 3천만 명 정도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에 반해서 사실 연예인 X파일 사건 때 미디어 기자들의 보도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사실상 포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포털을 통해서 유포되는 파일 문제나 포털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거의 제대로 된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언론사들이 사실상 포털에 종속된 부분이 드러났었던 거죠.
또 케이블TV도 여러 차례 이야기가 됐지만, 공중파 방송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시청률 점유율 측면에서요. 그렇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MBC ESPN에서 K-1방송인데, 최홍만이라는 스타가 나오면서 실제로 단일 케이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5%까지 나왔어요. 케이블 TV의 약진에서 대중문화와 스포츠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올해 한류가 어떻게 보면 주춤한 상태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방송계와 언론계가 지금까지는 한국 스타들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중계 보도하다가 한류가 유통되고 있는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하반기부터 재미있는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로 방송사 쪽에서 아시아에 대한 프로그램 많이 제작하고 음악프로에서 아시아 음악을 소개하고, 아시아 송 콘테스트 등 행사를 많이 하고 한중가요제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다 파는 것 하고 우리가 수용하는 것을 처음으로 눈을 뜬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균태= 독립적 인터넷 신문들을 보면 물론 지금 현재 온라인 신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사실인데, 담당하고 있는 취재기자들이 저널리스트로서의 취재기법은 고사하더라도 전문성이 심각한 것 같아요. 특히 헤드라인 보면 헤드라인 뽑을 수 없는 것을 헤드라인으로 뽑습니다. 일단 스트레이트 뉴스 같은 경우 기본적인 철칙이 중립성과 객관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특정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것은 온라인 신문도 하나의 저널리즘에 포함된다고 보면 인터넷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을 포함해 경영진도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재교육을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온라인 신문의 영향력 강화될 것으로 볼 때, 물론 기존 신문도 문제점이 있지만, 인터넷 언론도 전문적인 측면과 윤리적인 측면에서 기본 원칙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교육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사회= 조금 전에 백 교수님께서 폭로․냄비저널리즘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에는 어느 매체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실들을 보도하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규명하거든요. 그래서 사실이면 받아씁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매체에서 보도하면 ‘어느 매체에서는 이랬는데 상대방은 아니라고 한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근 몇년동안 두드러진 것으로 팩트 파인딩에 소홀하다는 것이죠.
한균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정말 폭로저널리즘의 근본인데, 그야말로 오랜 시간을 두면서 심층적으로 취재해 완벽한 자료를 가지고 폭로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은 단순하게 일반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바로바로 터뜨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백=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신문의 경우는 기자들이 만들기 때문에 전체를 논의할 수가 있는데요, 황우석 교수의 보도와 관련해서 방송 같은 경우 저널리즘 양태가 2가지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자들이 보도하는 것과 PD저널리즘 두 가지입니다. 이번 KBS, MBC, SBS를 보면 기자들이 만드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각각 하나씩 있고 PD들이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하나의 아이템을 45분에서 60분 정도 다룹니다. 이야기의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고 화면들을 배치합니다.
반면 기자들이 만드는 탐사보도는 보통 3꼭지 정도입니다.
시청률을 보면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 앞섭니다. 그러면 실제로 방송에서 가지고 있는 PD저널리즘인데, 아까 황 교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온 인터넷 저널리즘의 문제도 있지만, PD들이 제작하는 저널리즘의 형태가 하나의 아이템을 이야기 구조로 끌고가다보면 사실 확인은 중간 중간에 끼어있고 그 중간에 문맥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야 하기 때문에 재연의 과정이 들어갑니다.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프로그램이 시청자에 어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들이 점점 더 우리사회에 파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 프로그램이 스토리텔링 구조를 하고 또 영상화면 중심 이다보니 실질적으로 그 속에는 우리 언론이 많이 지녔던 언론의 보도 원칙인 객관성 균형성 공정성이 위축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것에 반해서 증진될 부분은 창의성과 아무도 못 건드리는 핵심을 다룰 수 있는 능동성, 그 다음에 이야기를 재미나게 가지고 가는 즐거움의 3가지 특성이 나타납니다. 이게 기존에 저널리즘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새롭게 부각되는 특성이 매치됐을 때 실제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황우석 교수 보도도 PD들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화면의 연결성, 그리고 국민들이 가진 호기심이 어필해서 일반 기자들이 만드는 탐사 내지 폭로 저널리즘보다 훨씬 더 시청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보다 기자 정신에 맞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사실 기자 정신은 기자들이 만드는 기사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거든요. 사실 중심 보도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는데, PD저널리즘은 일반적인 사실을 공간으로 하지만 거기에 약간의 상상력과 제안을 가미시키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가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PD저널리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게 과연 저널리즘인가에 대한 접근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탐사보도의 대표적인 미국의 '60minutes'는 기자들이 취재한 것을 PD가 편성해서 내보내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PD저널리즘하고 방송기자들이 하는 저널리즘의 두 가지 양태인데 PD저널리즘이 더 인기가 있다는 거죠. 이게 저널리즘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는데 그 문제에 과연 저널리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느냐는 것이 학자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야기한다고 봅니다. 황 교수 사건도 PD수첩에서 문제를 터뜨려 놓았는데, 그 뒤의 매듭은 일반기자들이 메워 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런 역할분담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 잣대로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시정해야 하는 것인지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정하려고 하면 45~60분 프로그램을 하나의 아이템으로 기자들이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선 기자들하고 이야기를 해 봤는데, 예를 들면 영생교 문제를 기자들은 취재하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말하고 나면 끝납니다. 더 이상 아이템을 늘릴 수가 없는데 PD들은 할 수가 있거든요.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서 시리즈로 만들잖아요. 이런 부분을 앞으로 언론학자들이 과연 같은 잣대로 평가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설원태= 백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까 기자직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성이 좀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 중에 기자들의 취재는 재미가 없다는 말씀은 제게 새로운 이야기인데요. 그게 방송기자도 있고, 신문기자도 있고 PD가 있는데, 아마 PD들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자신의 업무이다 보니 재미 쪽으로 많이 기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까 영생교 문제도 말씀하셨는데 PD쪽 구조가 그런 부분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다루려면 방송사 내의 보도국에서 기자들이 하는 것도 새로운 형태로 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특집부 비슷한 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기자와 피디의 역할이 다른 것 같습니다. PD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다는 것은 기자로서 반성하고 배워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방송기자들도 PD들처럼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꼭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균태= PD저널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국적인 사항입니다. 백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취재는 기자가 담당하는 것이고 보도도 기자가 하는데 한국적인 상황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 등의 탐사기획프로그램을 PD들이 직접 나서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 황우석 교수 문제처럼 취재상의 윤리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그러한 취재교육을 안 받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MBC가 예전에 시도해서 실패한 것이 ‘피자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PD는 역시 화면을 잘 만들고 서사 구조의 전달력이 뛰어나고 반면 기자는 취재가 강하고 그래서 이 두개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접목시키느냐가 우리 한국 상황에서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 같아요.
어차피 방송사의 프로그램의 경우 재미, 흥미, 시청률을 강조하고 또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방송사에서 시청률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프로그램을 만들겠어요? 단, 어떠한 사실에 접근하고 취재할 때 기자에게 PD들이 어떻게 주문해서 영상으로 접목시키느냐는 쪽에서 시도를 계속 추구해볼 필요 있어요. PD가 저널리스트는 아니죠. 저널리스트로서 행세를 하다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것이고 어떠한 탐사기획프로그램을 만들 때 PD의 역할과 기자의 역할을 분담해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노력을 방송사의 데스크나 경영진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사회= 최근 황 박사의 논문이 문제되니까 방송이나 PD 쪽의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혹시 추가하실 발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백선기= 제가 추가하면, 차기 언론학회장에서 굉장히 민감한 발언을 하셨는데 왜 민감하냐면 제가 모 언론사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가 상당히 치도곤을 당했습니다. 이번에 알아보니까 PD가 만드는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기자가 만드는 것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프로그램 기획안을 보면 PD들이 만들 때는 화면중심으로 갑니다. 거기에 말이 부가되는 것이죠. 반면 기자들이 만드는 기획안은 원고중심입니다. 신문사에서 기사 쓰듯이 말로 해놓고 어떤 장면 넣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죠. 기자들이 만드는 것은 장면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PD들은 그 장면과 관련해서 다 일관성이 있습니다. 연속적인 것이죠.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화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 오늘 뭔가 배웠다’, ‘오늘 무엇인가 알았다’는 것이 딱 떠오르는 거죠. 기자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일반 신문사 기사랑 거의 같아요. 기사에 화면을 붙이는데 그 화면이 들쭉날쭉이죠. 시청자들이 사건을 보는데 무엇을 봤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널이 점점 더 피디들이 만드는 것으로 가는 것이죠. 그들의 역할도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학계에서는 PD저널리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까 인터넷 보도도 저널리즘이냐고 하느냐와 같은 위치입니다. 인터넷 언론도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저널리즘을 보도 원칙에서 보면 저널리즘은 절대 아닌데 우리사회에서 의제설정의 기능이 인터넷 언론에 많이 가있습니다.
사실 확인 부분에서는 약해도 수많은 시민기자들 중심으로 해서 의제설정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저널리즘의 역할이라면 그들도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의 이탈 현상을 우리가 예견할 수 있겠죠.
설원태= PD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을 기자협회보도 최근에 사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PD저널리즘에 대한 공과 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PD저널리즘이라고 쓰면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쪽은 당연히 PD 쪽인데요, 어쨌든 이번 황 교수 사건과 관련해서 PD들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제기 했다고 일단 인정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널리즘 측면에서 보면 저는 대중을 상대로 또 대중과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 중에 PD와 기자간의 상호 협조를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황우석 교수 사건이 진행되는 MBC 내부에서도 PD와 기자들 사이에 알력싸움이 있어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PD들도 저널리스트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쪽에서 PD저널리즘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자 저널리즘이란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들이 하는 프로그램과 PD들이 하는 프로그램이 어떤 형태로든 간에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면 서로 알력 싸움을 하는 것보다 서로 협조하는 방향을 사별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KBS의 경우 ‘PD특파원’이 있고요, 협조가 잘 안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회= 그러니까 재미와 의미가 같이 가야 되는데 재미로만 가면 시청률은 높아지거나 구독은 잘 될 수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잘 조화가 안된다는 것이 결론인 것 같습니다.
변희재= 황우석 보도 이전에 높이 평가 받았던 PD저널리즘의 하나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수경사 보도였습니다. 그 때 수경사의 취재 방식은 몰래카메라가 들어가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로 가장해서 몰래카메라가 들어갔습니다. 또 땅을 사겠다는 연기를 통해 몰래카메라를 촬영했습니다. 황 교수 관련해서 취재 문제를 언급하려면 사실 수경사 때부터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식의 비판을 저는 했습니다.
아까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부분이 가능한 것이 PD들이 영상을 강조하니까, 단순하고 드라이하게 말로써 비판할 수 있는 부분도 영상으로 비판하게 되면 완전히 장벽을 뛰어넘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PD의 입장에서 그림의 완성도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추구하다 보면 그렇게 무리하게 찍지 않아도 되는 것을 찍어야 되기 때문에 무리한 방법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회 = 이제 언론과 정부와의 관계 및 정치권력의 관계도 2005년의 화두가 됐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한균태= 지금 정부와 언론의 관계는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건전한 긴장관계’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건전한 긴장관계’라기보다는 ‘갈등관계’였던 것 같아요. 그것은 언론과 정부 양방의 책임이 있는데, 미국도 항상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면 한 6개월 정도의 밀월관계를 유지하다가 그 이후로 점차적으로 비판 감시자의 역할을 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인 성향이 현재 한국 신문을 주도하는 소위 조중동의 성향과 상충되면서 지속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또 언론사끼리도 양쪽으로 갈라서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도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사실인데 신문사에 따라서 다른 사실이 전달되다 보니까 ‘과연 뭐가 사실이냐?’에 대한 의문을 많이 제기하게 되요. 어차피 언론이라는 것 자체가 회의주의인데,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게 과연 그런가?’라는 회의나 비판을 하게 됩니다. 기자들이 직업관념 상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회의적이고, 냉소적이고 그러면서도 균형적인 감각이 필요한데, 현재 노무현 정부는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의 기본적 역할이라는 것이 정부의 모든 정책에 비판의 칼을 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노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언론이 싸잡아서 비판한다는 식으로 판단하다 보니까 대통령이하 정책 브레인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생각해서 건전한 긴장관계라기보다 갈등이 심화되는 방향을 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선기= 저도 지금 한 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그동안 언론과 정부가 오랜 관계 속에서 긴장관계도 없었고 유착관계였는데, 노무현 정부 3년 거치면서 양쪽 모두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영역에서 다양한 소스 찾는다는 면에서 실질적으로 다양한 언론에 대한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발전과 인터넷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우리사회의 중요한 의제설정 기능을 갖게 된 것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저는 가장 먼저 언론과 정부가 취재와 정보원으로써 신뢰관계가 없어진 것이 서로 간에 긴장 관계를 조성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신뢰관계가 없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을 언론사에 주지 않고 자기들이 갖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서 언론과 직접 접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른바 이것은 기존에 있던 언론의 역할 자체를 일거에 무시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직접 국민과 접하겠다고 생각이 있는 것이죠. 그것은 이미 언론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쟁점은 정부의 리더들의 입장에서 언론의 역할을 실제로 매개변인으로 삼지 않고 무시하는 변인으로 생각했을 때 언론은 설 땅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정보원이 과거에는 60~70%가 정부로부터 나왔는데 소스가 가지고 있는 타당성과 신뢰성이 없기 때문에 언론도 다른 쪽에서 정보원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것은 언론의 건전한 기능 자체가 약화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언론사 쪽에서는 정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기사화하지 않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3년 거치면서 양쪽 모두 황폐화 되고, 그러면서 사이버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아직은 저널리즘이 아닌 새로운 매체가 과장되게 부각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기존 언론에서 보면 엄청난 위기입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국민들하고 직접 접하면서 가질 수 있는 이득은 있지만 우리사회의 제4부의 기능으로써 언론의 기능을 그렇게 폄하해버리면 실제로 정부가 정말 급박한 문제나 힘든 문제가 있을 때 언론이 완충적 역할을 하는 그런 역할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2년 정도 남았는데 언론이 갖는 매개변인으로써의 역할을 정부가 나름대로 인정해 주면서 기존 언론의 활성화도 열어주고 새로운 매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면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언론의 입장에서도 과거에 정부에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유착관계를 형성했는데 지금은 완화된 것 같습니다. 언론도 이제 정보소스를 새롭게 개발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굳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아도 기사작성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상당히 불안한 환경이지만 이것을 기회로 잡으면 언론사 자체도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금이 현상이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사회= 앞으로 언론계가 상당히 잘 돌아갈 것 같은데요, 차기 회장(언론학회장과 언론정보학회) 두 분이 정확하게 보고 계시기 때문에 상당히 뿌듯합니다. 학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변희재=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데요. 조중동으로 보느냐 아니면 인터넷 매체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죠.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 제가 국회를 4대 입법 통과될 때 출입을 했었는데, 2004년 12월부터 한 달간 굉장히 대립이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문제로 개폐 논쟁이 있어서 대립이 상당했어요. 그럴 때 정치인 들어와 국회 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하는데 개혁적으로 평가받는 여당 의원 3명이 제가 기억하기로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는 수준이었습니다. 들어와서 조선일보의 오보를 지적했습니다. 오보에 대한 브리핑까지는 좋은데 제가 판단하기에는 국회 브리핑룸에 정치인이 문을 차고 들어와서 신문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을 쓴 사람 나오라고 했습니다. 마치 선생이 잘못한 학생 나오라는 수준이니까 결국에는 국회의원 보좌관과 기자들이 거의 몸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브리핑 룸에서 취재원이 들어와서 소위 ‘깽판’을 쳐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놀란 것은 브리핑 룸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정치권력을 국민의 눈으로 감시하는 그 공간인데 거기에 취재원이 들어와서 ‘깽판’을 쳤으면 이데올로기를 떠나 기자들이 합심해서 내쫓는 것이 우선인데 거기서도 국가보안법 찬반에 대한 언론사의 입장이 다르니까 폐지 찬성하는 쪽에서는 심정적으로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아니 쪽은 싸우는 등 안에서도 갈리는 상황이 연출됐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참담했습니다. 기자의 원칙과 권익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후에 논조가 나와야 하는데 논조 따라가다 보니까 그러한 원칙을 버리는 이른바 갈갈이 찢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주제와 관련해서 이야기하면 조중동과 정권이 계속 부딪히고 있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아주 중요한 정책적 사항에 대해서 부딪히는 것도 있지만 총리나 청와대 대변인, 홍보수석의 자극적인 말로 싸우고 사설로 언론이 받아치는 말싸움 공방이 주로 이뤄지다 보니까 그 이외의 언론은 이 부분을 다루기 곤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정책적인 문제라면 정책을 판단하면 되는데,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싸움할 때 조중동에 감정적이라고 비판하면 어떻게 보면 정권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고 정권에 비판하면 조중동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해서 실제로 매체의 비평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전체적으로 조중동과 정부의 싸움이 아니라 그 이외의 언론도 이상하게 개입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전체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조중동에 대해 의도적으로 도발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발해서 감정적으로 나오게 해서 싸움이 이뤄지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전체적인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뉴미디어 부분 특히 포털 사이트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차라리 기존 신문이 보도를 안 하면 포털이라는 영향력이 막강한 새로운 공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언론재단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니까 인터넷 전체 트래픽의 50%가 포털에서 발생하고 있고, 50%의 절반 즉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25%가 네이버와 다음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그 정도의 영향력이면 포털하고만 관계를 잘 맺으면 충분히 조중동이 없어도 정책 홍보하는 데 문제가 없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파란닷컴에 홍보란을 만들어 놓았죠.
그래서 포털은 일반 언론사와 달리 정보통신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문화관광부나 언론중재위원회의 관리 감독이 없이 정통부가 직접 관리하니까 상당히 편한 공간이죠. 언론권력을 그대로 누리는데 정권으로서는 상당히 편한 상황입니다. 이게 또 다시 언론전체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설원태= 저는 조금 전에 한 교수 말씀에 동감을 합니다. 현 정부의 대통령부터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 과도하게 민감하다는 생각에 동감을 하고요, 현실적으로 방송매체부터 여당지도 있고 한데, 야당지의 감정적인 비판이 있는데 그런 사소한 비판에 노골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좀 묘한 것은 ‘신문과 방송’의 설문이 있는데 언론인 중에 한 40명 정도가 정부 홍보직책으로 옮겼습니다. 홍보에 대해서 상당히 정부가 신경을 쓰지만 제가 보는 관점은 대통령부터 총리, 홍보수석 등의 발언부터 역 홍보적인 발언이 많아 스스로 비판을 자초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언론과 정부의 관계에 있어서는 언론인 마음대로 정부를 비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언론의 자유가 예전에 비해 많이 신장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좀더 시간이 감에 따라서 건전한 비판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낙관이 있습니다.
백선기= 실제로 변희재 씨 이야기하셨는데, 우리사회에서 이전에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문이 가진 속성 가운데 신문의 이데올로기가 신문 전면에 드러난 것이 최근 3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조중동과 정부’라고 표현이 되지만 실제로는 보수와 진보의 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동안 ‘색깔론’이라고 하면서 북한과 관련한 이념논쟁에서 가능하면 거론하지 않으려 했던 부분들이 요즘 언론이라고 하는 집단과 정부의 상박 구조에서 보면 조중동을 대표하는 보수와 정권이 지니는 진보적인 성향과 거기에 연결되는 언론의 대립입니다.
우리가 이제 다뤄야 할 문제가 신문이 지니는 이념성이 실질적으로 객관보도나 공정보도를 이야기 할 때는 상업적인 측면 때문에 이념은 수면 아래 가라앉힌 채 사실 중심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지난 3년간 벌어진 것은 이념이 기사화 되고 기사의 근본토대가 되는 상황입니다. 과거에 정당지로 출발해서 남북대립이 심각할 때 이념지로 출발했던 그런 상황과 같은 레벨에서 논의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지금 조중동을 욕하고 정부를 욕하지만 사실은 우리 내면에 그 두 집단과 연결된 이데올로기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데올로기가 앞으로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대리전을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용납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기사와 내면에 스며드는 정도는 우리가 용인할 수 있지만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나서서 오히려 신문이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줄을 서는 상황은 기자협회나 학자 그리고 언론종사자들이 이것이 가지고 있는 근본 폐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념이 앞서면 사실보도니, 객관보도니, 공정보도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죠. 그러니까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은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고 여기에 저항하는 보수우익을 상대방으로 놓고 우리 편과 네 편을 갈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언론보도라기보다는 그 언론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의 나팔수 노릇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 언론과는 실제로 협조가 잘 안되죠. 그러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매체를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우연하게도 포털 사이트라고 하는 사이버 저널리즘의 형태가 된 것이죠.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양 쪽의 잘잘못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언론이 이데올로기적 기구인가라는 측면에 문제제기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언론이 이데올로기적 기구라고 드러났지만 현재처럼 표면에 등장해서 언론사가 싸우는 것 같지만 이데올로기의 갈등인데 우리가 지금 이야기했던 많은 논리와 원칙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언론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전면에 등장한 것에 대해서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가 조장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설원태= 제가 생각하기로도 이데올로기 대리전처럼 가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이 있었지만 소위 보수지라는 신문에서, 대표적으로 강정구 교수에 관한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이데올로기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장사가 된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를 옹호하는 보도해도 독자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죠. 말하자면 단순히 장사가 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선기= 현재는 현상유지겠죠. 그런데 장사는 절대로 안됩니다. 왜냐면 신문의 역사발전을 보면 이렇게 이데올로기로 첨예하게 대립하면 독자를 다 잃게 됩니다. 지금은 현상유지는 하는 것이니까 사안에 따라서 폭로를 하는데 이게 점점 더 심화돼서 신문이 이데올로기기구라고 생각하면 독자들은 다른 쪽으로 돌립니다. 포털이랄지 방송으로 말이죠. 아니면 뉴미디어로 갑니다. 신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신문은 점점 독자들을 잃어버리는 상황이 될 것으로 봅니다. 지금 이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말이죠. 아까 이야기 같이 기자 브리핑 룸에서 국회의원을 두고 양측이 갈리기 전에 일단 막아놓고 국회의원과 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언론사끼리 싸웠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관이 됐다는 이야기겠죠. 이렇게 가다가는 신문은 제가 볼 때 희망이 적은 언론매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균태=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차피 자본주의 시장에서 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객관성을 강조해야 됩니다. 객관성이라는 것이 언론으로서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도 결과적으로 특정 정치적, 이념적 성향을 제시했을 때 신문이 잘 팔리지 않습니다. 신문을 잘 팔기 위해서는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무색무취로 나가야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에 취우치지 안아야 잘 팔립니다. 그래서 객관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언론의 원칙이 됐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 언론의 상황은 과도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더 건전한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설립하려면 언론에 대한 대통령을 포함해서 정책입안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을 정책 홍보의 매체로만 생각하니까 보수적 성향의 조중동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고, 정부의 정책을 쉽게 알리기 위해 대안으로써 인터넷 매체를 찾아내 인터넷에서 정책을 홍보하고 있는데 결국은 기존 보수 언론도 궁극적으로는 어느 특정한 이념만 지향하면 잠재시장에서 몰락할 위험 있고,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의 역할 충실히 해야 하고 정부 관계자들은 언론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양자간 돼야만 건전한 긴장관계가 유지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희재= 이데올로기부분에 대해서 제가 첨언하자면 편집하는 사람에 따라서 어떤 경우든 이데올로기가 배제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코멘트를 다 포괄하는 포털 사이트의 편집도 저같이 1년 내내 포털하고 싸우다보면 이데올로기가 보이거든요. 다음하고 엠파스는 친정부 쪽이고 네이버와 야후는 반정부 쪽이라고 거의 체감으로 분류될 정도로 이데올로기가 배 있는데, 직접적으로 현장에 들어가 보면 전문성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보안법폐지나 사립학교법이나 언론법 등 찬반이 들어갈 때 이데올로기적으로 찬성하면 진보 반대하면 수구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이 법들이 제정됐을 때 이후 어떠한 파급효과가 일어났는지 아주 전문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거든요. 그저 조건반사적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라서, 전문성을 추구하고 확보하면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더라도 지금 같은 부작용들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선기= 학계에서 조금 보충해야 할 부분은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거든요. 사실 이데올로기는 스며들어 있어 학자나 전문가들이 밝혀냈을 때 그것을 이데올로기라고 하거든요. 우리가 현재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고 서로간의 능력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이 사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죠.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는 과거 정당지의 역할로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거든요.
즉, 이데올로기로 구분되면 우리사회는 없던 사항도 현재로는 편가르기가 돼버립니다. 이미 이데올로기로 편가르기가 되면 전문성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아까 전문성은 아까 한 교수님 말씀대로 객관성이나 상업성이 개입됐을 때 이데올로기를 잠재우기 위해서, 이데올로기를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을 때 전문성이 부각됩니다. 그러니까 전문성이 팩트고 그것을 누구나 다 윤리적으로 인정하고 동의하는 상황인데,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마다, 황우석 교수 관련 보도도 이데올로기로 구분돼 칭찬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전문성을 논의하지 않고 황우석의 공과에 따라 구분되듯이 우리 언론이 정치지향적 이데올로기가 너무 극명하기 때문에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갈 틈이 없어진 것이죠.
황우석 관련 보도도 전문성에서 보면 언론에서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네이버나 다음이 인용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논문의 진위여부가 나타났듯이 이미 드러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고 이용하는 언론은 이미 전문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어요. 다시 전문성으로 돌아가려면 옛날 상업주의로 가서 객관보도, 공정보도를 통해 이념성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는가가 의문이죠. 왜냐면 외적 영역만 강조하기 때문에 자극적으로만 갑니다. 전문성 이야기는 좋은 이야긴데, 전문성 확보라는 것이 기자들이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문성으로 갈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사건은 터지고 갈라서 있고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라는 것을 학자나 제3자에게 요구해서 전문적인 말을 인용하는 정도죠. 지금은 너무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념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설원태= 아까 브리핑 룸 안에서 언론인들 간의 싸움이 언론인과 언론사가 사회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언론사나 언론인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데올로기를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언론매체가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가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특정신문과 방송도 이데올로기 상품인데, 그것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감추고 이런 저런 정보와 섞어서 더 많은 시청자와 독자를 확보하는 싸움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까 제가 이데올로기를 팔면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은 만약에 이데올로기 상품이 독자를 떨어뜨리면 아마 특정사들도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보도의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봅니다.
사회= 2006년 전망이라는 것이 마지막이지만 이런 반성이나 평가에 이어서 내년은 어떻게 될지 전망이라기보다 당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선기= 2005년은 여러 가지 사항으로 봤을 때 언론들의 사회적 역할, 즉 기본적으로 워치독(watch-dog)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신뢰성을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심기구로서의 역할이 상당히 훼손된 한 해가 아닌가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돼서 대변인 노릇을 하고 그 쪽에서 이점을 살리려고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새해에는 더 큰 쟁점이 많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지역선거도 있고 2007년에 대선도 있고 해서 더 이데올로기화 될 것 같은데, 적어도 언론이 현재와 같이 스스로 정치쟁점의 중심에서 역할과 기능을 할 것이 아니라 쟁점에서 관조하고 객관화 시키고 냉철한 이성으로 비판하는 기능을 해 주길 바랍니다.
지난 3년간이 우리 언론에 있어서 기존의 모든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였기 때문에 언론은 스스로의 자리매김과 위치 지움을 해서 새해에는 언론이 가지는 기본의 임무인 사회에 대한 감시기능과 올바른 여론 기능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언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싸움에 말려들다 보니까 의제설정의 기능이 상당히 약해져 있는데 새해에는 아무래도 공적 기관으로서의 의제설정 기능이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그 기능을 다시 복원했으면 합니다. 요즘에 사실 관계는 기존 매체에서 보고 의견전달이나 의제는 포털에서 확인하는 형태가 우리 언론에 부과가 됐는데 우리 언론이 지니는 역할과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점이기 때문에 새해에는 비판기능과 제3자의 기능, 관조의 기능, 의제설정의 기능을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균태=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큰 문제는 뭐냐면 정부에서 국민들 사이에 이질감이 형성되고 분열이 일어나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계속해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언론이 나서서 해결하는 역할을 해줘야 된다는 것이죠. 국가가 이념적으로 서로 대립이 되고 혼란스러운 것이 언론이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 바로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이야기하는 의제설정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제설정 기능을 통해서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는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의제만 던지는 것이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이 아닙니다. 의제는 아무나 던질 수 있는 것이죠. 인터넷에서도 의제가 많이 나오니까요. 의제를 던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건전하게 여론 형성할 수 있는 공론의 장 마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언론이 좀 더 주도적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이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게 하는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매체별로 편협된 이념적 시각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언론이 한국사회에서 해야 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한국사회가 좀 더 민주화 하는데 언론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언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해 줘야 할 것입니다.
변희재= 저는 사실 좀 보는 것 자체가 낙관적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년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낙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 저점이라는 전제가 돼야 하는데 사실은 저점이라는 이야기는 2005년 초가 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현재 언론계의 위기가 너무 심화 되서 돌파구를 열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아닙니까? 여러 가지 대안들이 물밑에서 나오고 있고 실천도 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전통적인 기능이 문인전통, 선비전통이 있습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한국 언론을 뒷받침하는 큰 자산이거든요. 누가 뭐라고 해도 바른 소리를 하고 그런 부분에서 전폭적으로 언론을 살리면 최소한 인터넷이든 신문이든 글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한국사회에서 언론이라는 것이 필요하구나!’라고 느끼게 될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향후 한국 언론에 희망을 갖도록 하려면 예를 들어 청년실업을 들 수 있는데,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 정부에게 대책 마련하라고 비판하잖아요? 정부에서는 그럼 언론에서 해보라고 실제로 이야기 합니다. 정부의 반응이 잘못됐지만 반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부는 정책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행정기관인 반면 언론은 독자와 광고 떨어지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행정적, 정책적,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거든요.
그런 곳일수록 보다 더 진취적이고 남들이 이야기 못하고 남들이 못보는 것을 찾아서 먼저 선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래서 경제와 정치가 따라올 수 있는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실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 실제적으로 국민들이 언론에서도 이런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2006년에 이뤄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설원태= 저는 2006년에는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나와서 다양한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10월 말에 독일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짜이퉁’ 같은 경우는 정치는 보수적인 기사를 싣고 경제는 자유롭고, 문화 쪽은 아주 자유로운 논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매체 안에 다양한 논조가 있는 것이죠. 우리 언론도 한 매체 안에 그런 시각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본 칼럼은 이 회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보적 매체 기자가 보수적 매체 기자 만나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쉽습니다. 한나라 국민인데요. 언론인 스스로도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한국내의 방송과 신문이 대중매체라고 보는데 정책 자체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고급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사들이 자사의 보도 정책을 자사 이익과 관련되는 쪽으로 매몰되는 상황인데, 객관적 보도를 견지할 수 있는 고급매체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존 매체는 그렇게 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이고요.
한균태= 제가 볼 때는 2006년이 자꾸 비관적이에요. 곧 지자체 선거도 있고 다음해면 대선도 있고 그래서 또 한번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까합니다. 기존 보수적인 언론은 현 체제를 바꾸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고, 현 체제와 코드가 맞는 언론매체들은 현 체제를 유지하려 할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여러분들이 말하는 희망적인 부분보다는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관행 자체가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 중요한 기회로 삼아서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을 하면 그렇게 낙관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설원태= 내년에 방문진 등 정부의 중요 기관장들의 임기가 3월에서 5월 사이에 끝나는데요. 임원들 교체하면서 언론사간 이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데,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 내년에는 피 튀기더라도 결말은 희망적인 방향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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