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연예 매체의 확산에 따른 기자들 간 보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예 기사는 실시간 속보 경쟁 환경에서 연예 기획사 측의 보도자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취재와 검증을 통한 기사 생산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연예 기획사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홍보 매체로 전락하고 있다.
이는 연예 뉴스의 소비가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에 기인한 것으로 이른바 ‘섹시’한 기사에 대한 수요와 소비가 맞물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스포츠 신문의 독점 영역으로 여겨졌던 ‘연예 저널리즘’은 한때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불리며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인터넷 언론 문화의 급속한 발달로 종이신문의 위기는 가장 먼저 스포츠 신문의 경영 악화로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 2004년에는 스포츠신문 ‘굿데이’가 파산 했고 포털 사이트 ‘파란’이 스포츠지 콘텐츠를 독점하면서 나머지 포털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연예 전문 인터넷 매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예 매체의 확산은 매체 간 경쟁을 불러왔으며 실시간 속보 경쟁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보도 행태가 팽배해졌다. 최근에는 연예 기획사측이 매체를 홍보 수단으로 여기는 상황까지 만들어져 특정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갈 경우 반박자료를 통해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매체 간 ‘보도 뒤집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획사 홍보도구 전락…매체간 ‘깎아내리기’ 비일비재
연예 산업의 큰 축은 연예인의 이미지 관리다. 때문에 연예인과 기자의 관계는 ‘필요충분’ 조건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스포츠 신문의 전성기 시절에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기사 한 줄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반대로 기자 입장에서는 연예인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연예 기획사만큼이나 연예 매체 숫자도 많다. 취재원과 기자 관계가 대등함을 넘어서 연예인이 기자보다 우월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한 매체가 특정 연예인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기사를 쓸 경우 기획사측의 반박 자료가 곧바로 수많은 매체에 보내진다. 인터넷 매체의 경우 특별한 지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 건의 기사는 수십 건의 기획사측 입장 기사로 이내 묻혀 지고 오보로 전락하는 경우도 쉽사리 접할 수 있다.
사례1. 강혜정 약물복용 보도 논란얼마 전 영화배우 강혜정과 관련한 ‘약물복용’ 보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 2일 뉴시스가 보도한 내용으로 강혜정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혜정의 소속사 측은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면서 해당 기자에 대해 법적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다른 연예 매체에 의해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대부분 ‘강혜정, 약물과다복용에 발끈’ 혹은 ‘기자 고소’ 등의 제목으로 게재됐다. 또한 약물복용인지 교통사고인지에 대한 매체들의 후속보도는 이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해당 기자에 대해 법적 대응할 것이라는 강혜정의 소속사는 현재까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사례2. 정려원 방송 펑크 진실 논란지난해 10월에는 탤런트 정려원이 드라마 촬영 펑크를 낸 것과 관련해 몸이 아파 병원에 갔었다는 소속사의 입장과 광고 촬영을 위한 고의성이라는 언론 보도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는 스포츠투데이가 최초 보도한 것으로 소속사의 반발이 잇따르고 반박자료를 인용하며 기사를 쓴 대다수 연예 매체로 인해 오보가 될 뻔 했던 사례다. 스포츠투데이는 최초 보도 이후 더 상세한 취재를 통해 결국 광고 촬영을 위한 사실이었음을 드러냈고 연예 매체 기자들 사이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여졌으나 이와 관련한 후속 보도는 이어지지 않았다.
사례3. 신정환 ‘도박 안했다’ 대량 오보지난해 11월 가수 겸 TV 오락프로그램 간판 출연진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신정환이 도박장에서 도박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당시 신정환은 ‘도박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도박을 시인했었다. 그러나 이를 보도하는 연예 매체들의 행태는 사실 확인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신정환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데 급급했다. 사건이 터진 직후 신정환은 도박을 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인터뷰를 했고 대다수 매체는 이를 여과 없이 보도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도박을 시인한 신정환은 방송 출연에서 줄줄이 낙마했다. 언론의 기능과 역할로 보면 당시 신정환의 말을 그대로 보도한 매체는 모두 오보를 낸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넘어갔다.
“한번 찍히면”… 포털·연예 권력 앞에 기자는 없다?
기자들은 연예 매체가 연예 기획사의 홍보수단이나 대변지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구조가 포털 시장에 근거한 실시간 무한 경쟁 환경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 발표회, 영화 시사회 등에 취재하러 오는 매체가 50여개나 되는 상황에서 검증이나 감시라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또 잘못된 것을 지적하려는 기사를 쓰고자 해도 기자들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이뤄지지도 않을뿐더러 포털 사이트에서도 노출되는 경우가 흔치 않아 무모한 행위를 하면 후속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놓는다.
대부분의 연예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서 소비되기 때문에 실시간 경쟁에서 단 1분이라도 기사 송고가 늦어질 경우 기사가 무의미해지며 이른바 포털의 편집진으로부터 선택되지 않은 경우는 기사의 생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포털을 시장으로 한 연예 매체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고 이는 속보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기사의 가치가 하락하는 악순환 구조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다시 포털이 좋아하는 기사나 연예 기획사에서 좋아하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이른바 ‘한번 찍힌 기자’는 차별 대우를 받는 경우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예인 행사가 있을 경우 기획사측에서 직접 전화로 정보를 전달받는 기자가 있는 반면 보도자료 하나로 끝나는 기자도 있으며 심지어 보도자료 조차 받지 못하는 기자도 있다는 것이다.
권력으로 비대해진 포털과 연예 기획사 앞에 기자의 기능은 사실상 ‘빨아주지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 기자들의 인식이다.
신변잡기 기사화 탈피…기자 스스로 가치 높여야
연예 저널리즘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비관할 수도 있지만 기자 스스로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아무리 공인이라 하더라도 연예인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폭로하려는 보도 행태도 지양돼야 하지만 여자 연예인의 옷 색깔, 드라마나 영화 속의 키스 장면까지 자세히 보도하는 게이트 키핑의 문제점도 바꿔야할 대상이다. 또한 연예 기획사를 의식해 스스로 기자이기를 포기하는 점도 지적 거리다.
한 연예 담당 기자는 “발로 뛰어가며 확인한 사실을 취재해도 툭하면 고소하겠다는 기획사측의 반응과 그것을 대변하는 수많은 매체들 때문에 후속 보도의 의지가 위축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고소하겠다는 기획사가 많음에도 실제로 고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연예인을 보호하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간지의 또 다른 연예 담당 기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10분 내로 기사를 송고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떻게 진실에 대한 검증을 바랄 수가 있겠냐”면서 “스스로 기자이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떤 기사가 대중에게 필요한 지, 1분 더 빨리 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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