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상 수상 소감-취재보도부문(철도청 유전개발 사업의혹)

철도청이 러시아로 간 까닭은…




  MBC 윤효정 기자  
 
  ▲ MBC 윤효정 기자  
 
“기사 거리를 건지지 못하면 기자실에 들어 올 생각도 마라, 알겠냐?”



1진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무엇이든 찾아야 했습니다. 이리저리 기사 거리를 찾다가 “철도청이 유전사업을 하려다 마피아에 수십억 원을 사기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황당한 얘기였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철도청이 민영화를 앞두고 수익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 일환으로 러시아의 유전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가 실패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취재가 계속되면서 누가 봐도 한심할 정도로 허술한 사전 조사와 투자 계획이 드러났습니다. 석유공사도 사업성이 없다며 손을 뗀 사업에 철도청이 뛰어들었지만 준비 과정은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중소기업과 합작 회사를 만들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60억원이 넘는 계약서에 당시 철도청장이 서명한 것입니다. ‘뭔가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고위층에 누군가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에 참여했던 한 중소기업 사장은 “다른 투자자들이 이광재 의원과 청와대를 들먹이며 ‘사업은 잘될 것이고 자금 마련 역시 정부가 힘을 써 문제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모든 사람들은 관련성을 부인했습니다. 석유 전문가를 자처하며 이광재 의원의 자문을 맡기도 했던 허문석씨 역시 당시엔 사업성을 장담했습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그는 취재가 시작되자 행적을 감췄고 지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지만 사실 관계를 밝히는 고리를 찾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전말에 대한 모든 것을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드러난 사실은 밝히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는 일파만파로 커졌고, 검찰 수사에 특검 수사까지 이뤄졌습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구속됐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당시 사업을 주도했던 철도공사의 왕영용 본부장이 러시아 측과의 협상에서 돌아와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던 날 “이 일을 세상에 알린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무엇이 국익인지는 보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진실만큼 국익에 부합하는 것은 없다고 말입니다.



분에 넘치는 큰상을 받게 됐습니다. 취재 당시 정리한 자료들을 다시 꺼내봤습니다. 처음 취재를 시작한 때가 지난해 1월.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늦었지만 같이 고민하고 함께 뛰어 주신 홍순관 부장과 이호인 차장, 그리고 김경태 선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사건 취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 대신 제가 담당한 구역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막아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들과 동기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MBC 윤효정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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