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상 수상 소감-취재보도부문(국가기관 불법도청)

X파일 테이프 입수하려다 왜 만들어졌는지로 취재 선회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  
 
  ▲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  
 
‘X파일 테이프’의 출처를 찾아가는 탐문취재가 별 성과 없이 끝나갈 무렵인 2005년 6월 어느 날. 막 출근하려던 참에 휴대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누군지 아시겠죠”



목소리만으로 신분을 ‘알아달라’는 것이었다. 얼굴 없는 익명의 취재원 A였다. 사정당국에서 정보를 다루는 A가 이렇게까지 조심할 정도면 뭔가 ‘큼직한 놈’이 걸린 게 분명했다.



일주일 전쯤 누구를 접촉해야 X파일테이프를 손에 넣을 수 있겠느냐고 A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A는 며칠 내로 알아봐 주겠다고 흔쾌히 대답했다.



A의 전화는 X파일테이프의 ‘X파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알려주려는 게 아닐까하는 짐작은 적중했다. A는 국정원 퇴직자 중 ‘공 서기관’이라는 직원이 도청테이프를 들고 나갔다가 삼성을 협박한 일로 국정원에 압수당한 일이 있다. “X파일은 바로 그 테이프다”고 일러줬다. 주변을 맴돌던 취재가 핵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힌트’를 준 셈이다.



X파일테이프를 손에 넣으려던 취재는 이때부터 ‘정보기관의 도청’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X파일테이프가 도청의 결과라면 처음으로 드러난 ‘도청 물증’이 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X파일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MBC는 ‘X파일테이프’의 콘텐츠인 정?경?언(政?經?言)유착에 포인트를 맞췄다면 테이프가 없는 입장에선 ‘X파일 테이프’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취재의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공 서기관’을 찾아내는 일도 녹록치는 않았다. 엉뚱하게 해답은 미국에 망명신청 중인 전 국정원 퇴직직원 김기삼씨에게서 얻어졌다. 김씨는 주저하다 어차피 공 서기관까지 알았다면 시간문제 아니냐는 설득에 ‘공운영’이라는 이름과 ‘미림’이라는 비밀조직명을 알려줬다. 국정원 직원들이 관련된 판결문을 죄다 뒤진 결과, 운 좋게도 공 씨의 주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공 씨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처음엔 어디 찾아와 행패냐고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지만 공 씨는 이내 많은 걸 털어놓았다. 은폐될 뻔했던 정보기관의 ‘도청’이라는 기본권 침해 범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2, 제3의 X파일테이프’에 들어있을 재벌과 권력간 유착 실상도 언젠가는 기자들에 의해 베일이 벗겨질 것으로 확신한다.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