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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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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 5월20일은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의 하나다. 신군부의 광주항쟁 유혈 탄압에 분노한 전국 언론인들이 조직적으로 저항한 역사적 투쟁의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들은 한국기자협회를 중심으로 언론민주화를 위한 검열 및 제작 거부 투쟁에 과감히 돌입하는 거사의 날로 5월20일을 결의했다. 그리고 정권찬탈에 눈이 먼 정치군인들의 광주학살에 항의해 계엄사의 언론 검열 및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포악한 군부에 정면 도전한 투쟁은 광주가 정치군인들에게 강점될 때까지 강행되었다. 이는 전국 대부분 언론사 기자들이 부당한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한 한국 언론사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979년 10·26 이후 전국의 기자들은 기자협회의 선도적 투쟁에 호응해 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 억압된 언론자유를 회복하고, 계엄사에서 강행한 언론검열을 철폐하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다. 당시 기자들은 언론과 정치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군부의 언론검열 부당성을 고발하면서 그 철폐의 당위성을 실천적으로 주장했다. 그 같은 움직임은 결국 신군부와 정면 격돌하기에 이르렀다. 즉 기자협회는 1980년 5월16일 회장단, 운영위원, 분회장 연석회의에서 “5월20일부터 검열을 거부하고 정권이 탄압할 경우 제작거부에 돌입한다”고 결의한 것이다. 기협의 결의가 있은 다음날인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기협 집행부를 검거 또는 수배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급기야 광주에서 천인공노할 양민학살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인들은 권력 찬탈에 눈이 먼 정치군인들이 광주학살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보도조차 언론검열로 저지하자 이에 과감히 항거, 검열 및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기자들은 언론사별로 치열한 내부 논의 등을 거쳐 광주시민 학살의 만행에 항거하고 진실보도를 주장하면서 5월20일부터 27일까지 피비린내 나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계엄사의 언론검열을 거부했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광주를 매도하는 정치군인들의 날조된 자료를 보도하는 신문, 방송, 통신제작도 거부 했다. 이는 언론인들이 전두환 군부의 광주시민 학살에 저항하면서 언론자유, 진실보도를 외친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그것은 세계 언론사에서도 유례가 드문 권력폭압에 대한 언론의 집단적, 조직적 저항의 성격을 지녔다.
전두환 군부는 광주 항쟁을 총칼로 진압한 직후 최우선적으로 언론 장악을 시도, 검열 및 제작거부에 적극 동참한 기자들을 중심으로 9백여 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켰다.
광주항쟁과 80년 언론인 해직은 동일한 시기에 민주쟁취라는 공동 목표를 내건 동시적 거사다. 이런 역사성이 아직도 공인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 사회 반개혁 세력의 집요한 책동 탓이다. 그것은 광주항쟁을 광주 지역 문제로 국한시키려한 반민주세력과, 언론인 대량 학살의 진상을 은폐하려 한 ‘제도언론’의 집요한 책동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이다. 기자들이 신군부의 광주 학살에 저항, 검열 및 제작 거부를 강행한 역사적 사실을 기리기 위해 5월 20일을 ‘기자의 날’로 제정하는 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기자협회가 26년 만에 기자들의 사명을 새삼 강조하는 거보를 내딛게 된 것에 민주세력은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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