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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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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영화 대박’을 축하했지만, 대박의 주인공들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타건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최근 스크린쿼터제 논란과 관련, ‘씨네 21’에 기고한 글에서 내가 한 말이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씨는 ‘한겨레’에 쓴 글에서 위와 같은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며 톱스타들이 매우 낮은 보수를 받고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한 사례를 몇가지 열거했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해다. 내 주장은 대중이 영화인들의 투쟁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대중의 인식과 정서를 설명한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톱스타들이 낮은 출연료를 받고 비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톱스타들이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하는 거야 각자의 자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를 조성해 압박을 가하는 것엔 문제가 있으며 별 효과도 없을 거라고 본다.
내가 원하는 방안은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영화인들이 평소 조금씩 기여해서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상시화하자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들고 일어나 결사투쟁을 외치는 방식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영화계의 양극화만 문제인가? 아니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간 비교적 잘 나가는 신문들이 신문업계 전체의 활로와 비전을 생각하지 않고 자사 이기주의에만 빠져있다는 비판을 하곤 했다.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 주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법 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업계문화’와 ‘평소실력’의 문제다. 그 신문들이 업계의 리더니까 봉사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주문이 아니다.
신문시장은 피 튀기며 싸우는 ‘레드오션’이다. 당연하다. 그건 저널리즘의 속성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레드오션’ 전쟁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신문이라는 매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업계 차원의 ‘블루오션’ 전략을 추구하는 건 불가능한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된다. 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게 없다. 각 관련 협회별로 무슨 일인가 하곤 있겠지만, 일반 대중의 눈에 띄지도 않는 일을 백날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 원인이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아비투스(습속)에 있을 거라고 본다. 그 습속은 특종을 위한 살벌한 경쟁으로 대변된다. 언론계 내부에 각종 카르텔 문화가 발달돼 있긴 하지만,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협력 습속’과는 거리가 멀어 미덕으로 예찬되는 ‘경쟁 습속’에 압도된다.
이는 일부 지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방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한 가지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자멸적 분열이다. 일부 지역에선 사주건 기자건 서로 만나는 모임이 없는 건 물론이고 서로 헐뜯기에 바쁘다. 경쟁은 보도에만 국한하고 같이 힘을 합하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큰일을 할 수도 있는데 바로 그 습속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에 대해 나오는 반론을 뜯어보면 주로 ‘신자유주의 숙명론’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자세도 찬성하건 반대하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꼭 신자유주의를 닮았다. ‘제3의 길’은 없다고 믿는 양자택일 노선은 한국인의 오랜 습속이긴 하지만, 세상의 관찰자에만 머무르려는 언론인의 습속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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