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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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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켜 문장을 쓰고 지우길 거듭한, 긴 밤이었다. 몇 달 전 전략기획실로 파견을 나온 뒤 본업보다는 딴 일에 몸과 마음이 쏠려있으면서 5월 20일로 첫 회를 맞는 ‘기자의 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온당치 못하다는 자기 검열 탓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보다는 귀한 지면을 섣부른 회의와 치기로 가득한 글로 채우게 될까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고래로 숱하게 생겨난, 수많은 기념일 중 이제야 말석을 차지하게 된 ‘기자의 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는 미디어 환경과 흔들리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신뢰 속에서 가치를 확인 받기는커녕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기자. 그들을 기리는 날을 그들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면 과연 다른 이들은 무어라 할 것인가? 현실에서 단 몇 초안에 건져 올릴 수 있는 자괴감과 멀게는 일제 강점기부터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소명을 위해 몸을 던졌던 선배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앞에서 설왕설래할 수밖에 없는 밤이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아침이 오고 선잠에서 깬 나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역시 한 줄의 진실을 찾기 위해 밤을 낮처럼 보낸 선후배들이 만들어낸 신문과 방송 뉴스였다. 간밤의 고민은 온데간데없고 신문과 방송 속의 동업자들이 들려준 소식 앞에서 위정자들의 몰염치에 분노했다가 이내 가슴 아픈 사연에 찔끔거리고 있는, 속절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조중동’과 ‘한경대’라는 대구의 단어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돼 버린 시절이다. 많은 걸 잃었으니 되찾아야 할 것도 많다. 그것은 지친 일상에서 잃었던 춘추필법의 정신이요, 한 없이 낮은 곳으로 직하할 수 있는 용기다.
그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가는 시민 그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그 숱한 기념일 중 기자의 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화답을 들을 수 있을 테다. 그 길을 향한 첫 걸음에 기자협회가 제정한 ‘기자의 날’이 있기를 바란다. 무릇 잔치는 주인보다 더 기꺼워해 줄 손님이 있어야 제 빛을 발하는 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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