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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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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3·1절 골프 파동’이 벌어졌을 때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띄었다. 언론은 이 전 총리의 골프 시점과 상대의 부적절성만을 물고 늘어졌을 뿐 골프 자체는 문제삼지 않았다. 이 전 총리가 누군가? 그는 92년부터 환경운동에 몰두해 환경사회정책연구소와 <환경과 사회>라는 책자를 만들었고, 민주당 환경특위 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그런 맹렬한 활동 덕분에 93년 한국환경기자클럽에서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 94년엔 환경운동연합이 주는 ‘녹색정치인상’을 받지 않았던가.
왜 언론은 이 전 총리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캐고 들면서 그 사실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걸까? 환경운동단체들은 골프와 관련해 노무현 정권을 ‘최악의 정권’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단 말일까?
아마도 언론은 ‘골프 대중화’라는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골프 대중화’는 6% 국민의 심리적 평정을 위한 것으로 대중의 동의를 받지 않은 ‘대(對)국민 사기극’이다. 밀담·로비·접대를 직업의 주요 요소로 삼는 분야에 종사하는 자들이 자기정당화를 위해 내세운 프로파갠다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이라 할 정치인·관료·기업인·언론인 등이 힘을 합해 꾸며낸 음모다. 이들은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초월해 뭉치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체제로 ‘골프 마피아’라 부를 만 하다.
‘방과후 특별학습’으로 내 ‘글쓰기 특강’을 듣는 학생들에게 ‘3·1절 골프 파동’에 대해 글을 쓰라고 했다. 한 학생은 이 전 총리를 옹호하면서 “골프가 정치인들에게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고 그들만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된 현실을 국무총리로서 무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말했다.
글쓰기 특강을 할 때엔 나는 ‘중립’을 고수하는지라, 그 주장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내심 노 정권이 목숨 걸고 외쳐온 정치개혁은 ‘오래된 현실’을 바꾸겠다는 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상당수 기업인과 언론인들은 골프를 치고 싶어서 치는 게 아니다. 고급정보를 얻고 인맥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골프장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밑바닥에서 일어나 ‘코리언 드림’을 이룬 이들은 자기 성취를 만끽해보는 나르시시즘의 용도로 골프에 빠져 든다. 운동권 출신 고위 공직자의 경우,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한 변명이 바로 ‘골프 대중화’다. 노 정권이 미친 듯이 ‘골프 대중화’를 추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골프 관련 담론은 완전히 마피아식이다. 의제 자체가 크게 왜곡돼 있다. 노 정권 사람들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골프 문제에서만큼은 환경단체들과 마주앉아 끝장토론을 해야 한다. 언론도 할 일이 있다. 언론은 ‘골프 대중화’가 과연 가능하며 바람직한 건지 검증해야 한다. 한국의 골프장 건설 방식은 ‘세계 최악’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검토해보면서, 한국의 국토와 인구밀도 특성에 맞는 건설 방식은 과연 없는 건지,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골프장 소통’ 방식은 과연 건강한 것인지, 다른 방식의 대화 문화를 키울 수는 없는 건지, 따져보고 짚어볼 문제들이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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