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기자 |
|
|
세계적 연예·오락업체인 디즈니 월드는 1991년 회사 창설 20주년을 맞아 자사가 여행경비를 전액 부담하겠다면서 수천개 국내외 언론사에 디즈니 월드 현장으로 초청했다. 일부 언론사들은 “공짜여행은 문제가 있다”면서 초청을 거절했지만, 미국의 방송 NBC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 회사는 기자·기술자 등 30여명의 직원들을 현장에 보내 ‘투데이 쇼’ 프로그램을 통해 생방송으로 디즈니의 20년째 생일을 크게 보도했다. 그런데 공짜여행의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내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고, NBC는 결국 숙박비·항공비 등 일체의 비용을 되돌려 주었다.
파문이 있었든 말든 디즈니 월드는 갖가지 매체에서 수천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자사의 행사를 보도해 주는 바람에 엄청난 광고 효과를 누렸다. 이런 행사에서 디즈니측은 굳이 보도협조를 요청하지 않았고, 기자들은 `보고 체험한 것을 알아서 잘 보도’해 주었다.
디즈니 월드의 사례는 우리가 말하는 ‘공짜여행 저널리즘(junket journalism)’에 관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공짜로 제공하는 유사한 사례는 국내 우리 기업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기업들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홍보를 위해 기자들을 해외여행에 초청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업들이 기자들을 유혹하는 공짜여행은 ‘촌지’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하겠다. 여기엔 한국의 골프접대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한국기자협회는 여러 해 전부터 “골프접대도 촌지에 해당한다”며 이를 거부하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촌지 파문이 요즘은 별로 불거지지 않고 있지만, 필자는 예전의 촌지 관행이 골프 접대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국 언론계의 촌지 관행은 진지한 저널리즘 서적에도 서술돼 눈길을 끈다. 미국 센트럴 미시간 대학의 쟈페이 인 교수와 캘리포니아 주립대(어바인)의 그레그 페인 교수는 ‘글로벌 저널리즘(Global Journalism, 2004, 제4판, 아놀드 드비어와 존 메릴 편저)’의 353쪽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기자실 제도와 촌지 관행(custom of chonji)은 언론인과 권력자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하지 않고 친근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간혹 언론인들이 촌지를 먼저 요구하는 일도 있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신문은 이런 추세에 반대해 촌지 받는 것을 금지했다.…”
두 필자는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촌지가 만연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들 나라의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장에서는 현금봉투가 기자들에게 나눠지며, 기자들에겐 주식 공짜여행 공짜식사 등의 형태로 선물이 주어진다.” 2001년 베트남에선 한 언론인이 20만 달러 상당의 현금을 뇌물로 받은 것이 사이공 타임스(2001년 10월 5일)에 보도돼 크게 물의를 빚었다. 이들 나라에선 기자들이 급여가 낮아 현금봉투를 받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촌지와 공짜여행과 골프접대는 지구상 언론인들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굳건한지 시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전문언론인 협회(SPJ)는 언론윤리 강령의 첫 항목에서 “선물, 혜택, 공짜여행, 특별대우, 특권은 언론인의 진실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값비싼 것은 무엇이든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했다.
어느 경영학자는 회사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돈을 들이는 것은 광고이고, 돈을 적게 들이려는 것이 홍보라고 말했다. 경영의 관점에서 돈이 적게 들고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 단기적으로 대가성을 입증할 수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언론인의 우호적 태도를 형성해 우호적 보도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 홍보맨의 본업이다. 촌지, 해외여행, 골프접대 등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내 기사는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기자가 몇 명이나 될까.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