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장과 자유 경쟁의 원칙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  
 
  ▲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  
 
지난 1982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의장 마크 파울러는 “정부는 방송사업자들이 시장의 정상적 메커니즘을 통해 수용자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서 ”텔레비전은 ‘화면을 가진 빵 굽는 기계(토스터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디어 상품을 일반 상품과 동일시한 파울러 전 FCC 의장의 논리는 그 후 미디어 시장의 자유 경쟁을 옹호하는 고전적 발언으로 자리잡았다.(파울러의 주장은 지난 세기말 20여년간 미국의 입법·사업·행정부 등 사회 전반에서 수용됐다.)



그러나 미디어 상품들은 자유경쟁의 원리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일찌감치 대두됐고 최근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Univ of Penn)의 C. 에드윈 베이커 교수가 이런 생각의 대표적 주창자다. 베이커 교수는 저서 ‘미디어, 시장, 그리고 민주주의(Media, Markets, and Democracy, 2002)’를 통해 “미디어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베이커는 언론 독과점의 폐해를 지적한 미디어 비평가 벤 바그디키언이나 미디어 학자 로버트 맥체즈니와는 달리 미디어 상품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춰 정부의 미디어 시장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베이커 교수의 주장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중인 신문법 등의 위헌 소송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베이커 교수가 말한 미디어 상품의 특이성은 무엇인가. 미디어 상품은 한 수용자의 사용이 다른 수용자의 사용을 방해하지 않는 ‘공공재’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수용자들의 사용은 타인들에게 긍정적·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미디어 상품은 수용자에게 판매되지만 ‘수용자의 관심’은 광고주에게 다시 판매되며, 수용자는 미디어 상품이 광고주의 영향을 받는지 아니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지 판단해 소비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같은 미디어 상품의 4가지 특성 중 미디어·수용자·광고주의 상호관계가 특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원론적으로 미디어 상품의 생산자들은 수용자(공중)의 필요나 이익에 맞는 미디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광고주의 영향 때문에 공중과 광고주의 필요를 동시에(또는 광고주만을) 고려해 상품을 만들게 된다(국내 일부 언론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 일변도의 보도는 광고주의 필요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게다가 광고는 구매력 있는 수용자를 많이 가진 매체로 흘러간다. 이들 매체는 수용자가 적은 매체보다 더 높은 광고수익을 올려 결과적으로 생산단가를 낮춤으로써 미디어 시장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이같은 특이성은 미디어 상품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미디어 시장에 대한 다소간 정책적 개입의 필요성을 내포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스웨덴은 1970년 신문시장의 독점을 막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신문 보존법(Newspaper Preservation Act)’을 도입했다. 이 법은 당파적 언론을 포함한 여러 신문사에 지원금을 폭넓게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스웨덴인들은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이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비해 핀란드인과 이탈리아인들은 언론사에 대한 정당들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허용해 사로 다른 목소리를 담아내도록 보장하고 있다. 미국 건국 초창기의 뉴욕은 신문의 경쟁과 당파성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광고를 경쟁적 매체에 동시에 배분되도록 의무화했다.



지난 20세기 영국에서는 최대 4백70만명의 노동 계층 독자를 가졌던 신문 ‘더 데일리 헤럴드(The Daily Herald)’가 한 동안 맹위를 떨쳤으나 결국 파산했다. 이 신문은 더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의 모든 독자를 합친 것보다 2배나 많은 독자를 갖고 있었고, 독자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구매력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주된 독자였던 탓에 광고주들은 이 신문을 외면했고, 이 신문은 적자누적으로 문을 닫았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신문이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자유경쟁으로 인해 사라진 것이다.



미디어 상품의 특이성과 외국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미디어 시장의 자유경쟁은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하도록 보장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한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미디어 시장에 적절한 지원 등으로 어느 정도는 개입할 필요가 있으며, 언론사들은 시장 메커니즘(광고주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초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 차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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