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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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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미디어 시장에 관여하거나 군소신문을 지원하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5월 중순 ‘신문의 미래, 그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이라는 보고서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프랑스 경제사회이사회의 미셸 뮐레르 위원은 이 의문에 대답을 주었다. 뮐레르 위원은 “프랑스 정부는 신문유통지원, 신문창간지원 등 여러 정책을 통해 언론 다양성을 보장하고 침체한 프랑스 신문산업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여론시장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1982년 한 미디어 그룹이 시장의 15% 이상 점유하지 못하도록 미디어집중금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86년 좌-우파의 합의를 통해 30%로 시장 점유 상한선을 높였다. 이후 미디어 회사간 활발한 인수합병이 일어났고, 그 결과 “신문과 방송 등 국내 미디어들의 내용이 동일해지고 있으며, 다양한 여론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뮐레르는 “미디어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 말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사회적 요소로 봐야 한다”면서 “여러 신문이 있어야 상호간 경쟁이 이뤄지면서 더 많은 독자를 창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문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오늘날 프랑스의 언론은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 신문시장의 침체는 미 텍사스주 베일러 대학의 리앤 프리드릭슨(Lianne Fridrikcsson)국제 및 정치 커뮤니케이션 교수가 ‘글로벌 저널리즘(2004, Global Journalism: 아놀드 드비어 교수 및 존 메릴 교수 공편)’에 기고한 글에서도 확인된다.
프리드릭슨은 “프랑스는 세계적인 ‘르 몽드’를 갖고 있지만 놀랍게도 서유럽내 국가들중 가장 취약한 신문 시장을 가진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면서 “프랑스 성인 10명중 9명은 전국 일간지를 읽지 않으며, 성인의 절반 정도만 지역신문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르 몽드(Le Monde)를 가진 프랑스인들이 유료신문은 별로 읽지 않는 채 지하철의 무료신문을 탐독하고 있어 기존 유료 신문들은 휘청거리고 무료신문만이 호황을 누리고 있음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탈리아에선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총리(재임 1994년, 2001년∼2006년 5월)가 되는 등 언론권력과 정치권력이 융합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멀티미디어 대재벌인 핀인베스트(Fininvest)의 회장이던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총리에 선출되면서 회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여전히 6개의 전국 채널과 1개의 지역채널을 소유하는 등 전국의 인쇄매체와 방송매체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베를루스코니를 견제하기 위해 2002년 “단일 미디어 경영자가 미디어 시장에서 구독료, 광고, 유료텔레비전 등을 포함해 최고 2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언론법이 마련됐다. 하지만 이 법도 특정인이 언론과 권력을 2중으로 장악하는 ‘이해 충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정부는 2002년 미국이나 비유럽연합 국가들의 자국 미디어 시장 진입을 금지해온 조치들을 종식시키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 법안은 동시에 영국 최대의 신문 소유주는 영국 최대의 상업 텔레비전 방송을 동시에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해 더 타임스와 더 선의 소유자인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ITV까지 소유하려는 욕심을 사전에 막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지구촌의 미디어 시장에서는 탈규제의 움직임이 확산돼 왔다. 그러나 탈규제로 인해 벌어지는 미디어 집단화 현상은 여론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고,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를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세계 각국은 이제 국경을 초월한 미디어의 집단화가 가져올 민주적 여론형성과정의 와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들도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집중화되는 바람에 여론이 보수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바츨라브 하벨 전 체코대통령이 2002년 5월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 행한 연설은 미디어 시장을 국경없는 자유경쟁에 맡겨둘 수만은 없음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화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로 인해 초래될 미디어 집중현상은 향후 50년뒤 표현의 자유에 최대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다. 직접적인 정치적 억압이나 검열은 없겠지만 복잡한 경제적 문제는 언론의 자유에 영향을 줄 것이다.”
미디어 재벌들이 여론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고, 미디어 시장이 향후 한미 FTA의 영향까지 받을 가능성이 있는 우리로선 유럽국들의 사례와 하벨의 경고를 종합적으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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