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2백50 회원 여러분, 8월 17일로 우리 한국기자협회는 창립 4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42년 전 이날, 1964년 8월 17일 오후 2시 현재 프레스센터가 들어서 있는 신문회관 3층에서 역사적인 창립대회가 거행됐습니다.
창립 당시는 갓 출범한 박정희 독재정권이 서슬퍼런 압제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군부독재정권은 허울 좋은 언론윤리위원회법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지만 선배 기자들은 한국기자협회 창립으로 과감히 맞섰습니다.
엄혹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투쟁 정신을 보여 준 선배 기자들의 용기는 지금 돌이켜 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립 이후 한국기자협회는 조국의 민주발전, 언론자유 수호, 언론인 자질 향상, 회원 친목 도모 및 권익옹호, 조국의 평화통일, 국제 언론 교류 확대 등 5대 강령에 따라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언론단체의 하나로서, 또 기자들의 대표조직으로서 제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창립 42주년을 맞은 지금 한국기자협회는 무엇하는 단체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협회 안팎 일각에서 친목단체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주지하다시피 법 외의 임의단체로 돼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아파트 부녀회나 친목 계모임과 비슷한 성격의 단체라는 것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상당수 회원들이 협회가 회원들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비판을 들이붓는 그 자체가 바로 혼란스러운 한국기자협회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지 않는 임의단체는 존립근거가 없으므로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집행부에서는 사단법인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법적 단체가 되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기자협회의 체제를 제도적으로 정비하며 협회 살림살이 또한 투명하게 꾸려 나갈 수 있다는 점 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고민이 사라질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회원들 간 동질감 회복, 재정 자립 등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단법인으로 바뀌더라도 시원스런 해결책이 없습니다.
기자협회 창립 당시부터 협회의 정체성을 놓고 논의가 있었습니다. 창립준비위원 가운데 일부는 기자협회를 처음부터 노동조합으로 출범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준비위원들은 만약 처음부터 노동조합으로 발족하다가는 창립 자체가 어려울지 모르고 노조로 출발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창립 후도 원만한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신중론 쪽으로 기울어 노동조합 운동을 기자협회의 장차 과제로 미뤄 두게 됐습니다(기자협회 10년사.한국기자협회.1975).
회원 여러분, 협회장으로 8개월 넘게 재직하는 동안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회원과 협회가 서로 겉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 회원들도 서로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한국기자협회의 정체성의 혼란에 있다고 봅니다.
협회를 사단법인화한 뒤 창립 당시 논의대로 기자노조로 대변신을 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 봅시다. 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아울러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여름을 나고 있는 우리 회원들에게도 힘을 넣어 주십시오.
회원들이 힘을 합하면 사회정의뿐만 아니라, 법정의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는 문화방송 이상호 회원이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에서도 확인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사저널 회원 동지들은 편집권 쟁취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창룡 협회 부회장은 부당해고를 당한 지 1년이 다 돼 가고 있습니다. 남과 북에서 이재민들에게도 격려의 손길을 내밀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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