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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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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선일보다. 범국본에서 펴낸 “한미 FTA 국민보고서”에서 그야말로 보석을 캐듯 ‘공화국 주권의 반환 협정’이라는 말을 찾아내고 ‘초국적자본과 국내독점자본의 전면공격’이라는 어구를 문제삼아 의기양양하게 ‘한미 FTA 반대=반미=친북’이라는 등식을 이끌어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몇가지 자극(공화국, 초국적자본 등)만 주어지면 바로 침(반미, 친북)을 흘린다. 한 마리가 짖으면 동네 개가 다 따라 짖듯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이를 따라 대대적으로 되풀이했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법원 판사들, 주지사들, 의원들 조차도 연이어 미국식 FTA, 특히 투자조항이, 자국의 헌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미국민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일보의 논법대로라면 미국의 판사, 지사, 의원들도 반미이며 친북이다(주간조선은 한술 더 떠 주권의 문제를 지엽적인 문제라고 한다). 그럼에도 투자조항이 삭제되지 않은 것은 미국 내의 이익보다 초국적기업의 이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면 공격’이라는 표현이 거북할 지라도 미국의 FTA 전략이 초국적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지적 양심’은 어디에도 없다.
조선일보의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한미 FTA 보고서에서 종속이론을 떠올린다. 7백27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 속에는 종속이론이라는 낱말도 찾을 수 없고, 아무도 종속이론을 인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심지어 이 책을 쓴 ‘학자들의 상당수는 과거 종속이론에 편승해 망신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다수의 필자들은 종속이론이 유행일 때 중고등학생, 기껏해야 대학생이었는데 이 때 이미 문명을 날리던 사람들이란 말인가. 더구나 80년대 후반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했던 몇몇 학자마저도 종속이론을 비판하는 진영에 섰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조선일보가 알 리 없다.
이런 것이 한미 FTA를 사실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가로막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들은 의도적으로 한미 FTA에 관한 찬반 논쟁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들 뿐이랴. 유사언론, 청와대 국정브리핑은 이러한 혹세무민의 원본이다. 신미양요 때 미국과 잘 타협했으면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을 것이라는 극단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더니 이제는 경제보좌관이 나서서 ‘19세기 종속이론’을 들먹인다. 종속이론의 효시라고 불리는 프랑크의 ‘저발전의 발전’이 1969년에 나왔는데도 말이다.
불행하게도 19세기의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던 이론은 현재도 건재한 자유무역이론이었다.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책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 리 없다. 동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한술 더 뜬다. 비교우위론의 리카도가 절대우위의 예(포도주든 방직이든 모두 영국이 우위)를 들었기 때문에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윈윈 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다. 리카도가 일부러 절대우위의 예를 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며 이론을 들먹이는 이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극단으로 단순화하자면 포도농사를 짓던 영국의 농민이 쉽사리 공장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즉 경제학의 용어로는 구조조정의 비용이 문제인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 국민경제보고서의 비판서를 낸다니 만시지탄일 뿐이다.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 이제야 논리와 사실을 따질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언론이 두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 줄 것을 감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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