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용 기자협회장 | ||
많은 사람들은 이제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은 끝이 났다고 합니다. 민주 투사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계의 현실만 보더라도 그런 말은 한갓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는 당연히 보도할 것을 보도했을 뿐인 데도 기소됐습니다. 시사저널 경영진은 기사를 자의적으로 삭제하고 그것을 정당한 편집권 행사로 강변하고 있습니다. 남창룡 부회장은 사내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강제해직됐습니다.
과거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타격 목표가 분명한 만큼 우리가 싸우기도 쉬웠습니다. 그러나 자본의 언론 목조르기는 소리없이 은밀하고 정교하게 진행돼 그만큼 싸우기도 힘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반민주, 반민족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천박하기 그지없는 천민자본과 결합해 언론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과연 역사는 전진하는 것인가 심각한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민주·민족 언론의 갈망을 무참히 짓밟았던 수구 냉전세력이 참회는커녕 백주대로를 활보하는 거꾸로 된 세상에 억장이 무너질 지경입니다.
우리는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견고한 장치와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신문법, 뉴스통신진흥법, 방송법 3대매체법을 근간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필요한 장치가 있다면 새로이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문법 재개정은 언론자유 신장과 언론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또한 여론 다양성 확보라는 법 취지에 맞게 재개정돼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는 이 시점에서 또 한 번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언론자유의 대척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에 제정돼 60년 가까이 존속해 왔습니다. 그 동안 언론계에서는 국가보안법이 남북관계에 적용되는 법으로 대부분 인식해 온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언론자유를 신장시키는 법입니까, 저해하는 법입니까. 국가보안법은 언론자유 측면에서, 그리고 민족의 통합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단언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철폐해야 합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980년대 말부터 북측과 언론교류를 추진해 왔습니다. 양쪽 언론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는 것은 남북 간 신뢰 조성에 그 어떤 분야의 대화보다 커다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교류 협력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언론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끝내 좌초하고 마는 사례를 한두 번 겪어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역대 남북 공동합의 가운데 가장 긴 생명력을 갖고 있었던 6·15공동선언마저 존폐의 갈림길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분단의 비극을 끝장내고 평화공존, 평화통일로 이끄는 민족의 대장전으로 평가받았던 6·15 공동선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은 다름아닌 우리 언론계 내부의 일부 수구냉전 세력입니다.
한국기자협회의 이름으로 경고 합니다. 더 이상 반민족·반역사적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 또한 우리는 당신들이 2006년 여름 무엇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해 둘 것입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북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인권문제, 핵문제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어떤 요설과 궤변을 늘어 놓았는지 똑똑히 기억해 둘 것입니다. 아울러 현 정권에도 묻습니다.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침략전쟁도 불사하는 미 합중국과 허울좋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민족경제공동체 건설, 동북아 지역 평화번영에 기여한다고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일주일 뒤에 중국 선양에서 북측과 만나 언론 분야에서 남북 간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올 안에 남북 언론인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분단 사상 초유의 언론인 토론회에서 우리는 북이 남침 적화야욕에 취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화해 협력의 의사가 있는지 기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기사로 알리고자 합니다. 수십년 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남아 있는, 북은 곧 우리의 적이라는 등식이 과연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공존의 새 세상을 열 수 있는 단초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회원 여러분, 내외빈 여러분,
민주와 민족을 양대 축으로 해서 출범한 한국기자협회는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일로 정진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실망스럽고 기대에 어긋나기도 하겠지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 봐 주십시오. 아울러 저희들이 가는 방향이 옳다면 아낌없이 성원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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