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세력이 바쁘다.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을 둘러싸고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다. 성명도 발표하고 거리시위에도 참가한다. 검찰은 평검사 한 사람의 신문 기고문 때문에 바빠졌다. 옛것을 지킨다고 해서 ‘수구’이지만 좀체 세상의 변화를 내켜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변화에만 둔감하다면 별 문제다. 작통권에 대한 수구세력의 논리는 비약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작통권을 환수하면 한·미 동맹이 깨진단다. 너무도 간단하다. 작통권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미 두나라 사이에 논의됐다.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협상이 급진전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반미친북’ 세력인 참여정부가 작통권을 빼앗은 것으로 보이는가 보다. 참여정부가 작통권을 환수한 뒤 한·미 연합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란다.
논리의 비약에는 끝이 없다. 여기에는 수구언론도 한 몫하고 있다. 수구언론이 퍼뜨리면 수구집단이 되풀이해 주장하고 다시 이를 수구언론이 받아쓰는 ‘확대재생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수구세력은 참여정부를 향해 “작통권 문제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작통권 문제를 이념적으로 몰아붙여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바로 자신들이다. 너무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수구세력은 ‘친미 반북’임을 자처한다. 그런데 수구세력의 비논리와 왜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지적됐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두 나라는 강력하고 필수적인 관계”라며 한·미 동맹에 변함이 없음을 역설했다. 작통권을 넘겨주면 금방이라도 한·미 동맹이 깨질 것이라는 수구세력의 호들갑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나아가 “작통권 이양은 한·미 관계의 성숙한 변화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참여정부가 작통권을 넘겨달라고 떼쓴 게 아님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또 작통권 문제의 정치쟁점화에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작통권은 한국전쟁 때 일시적으로 미국에게 넘겨준 것이다. 한 나라의 주권과도 같은 작통권을 넘겨받는데 무려 50년이 넘게 걸린 것도 시대의 희극이다. 그리고 ‘시대의 성숙한 변화에 따라’ 미국 스스로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수구세력은 싫단다. 권한을 줘도 싫단다.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최근 검찰청사에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의 몸부림이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금태섭 검사는 한겨레신문에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했다. 피의자의 억울한 피해를 막아보자는 지극히 인권적 측면의 기고문이다. 원래 10회 예정이었지만 지난 11일 첫 편이 나가자 서초동이 들썩거렸다. 상부에 보고도 없이 기고를 했고, 기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금 검사는 “기고를 통해 검찰이 변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기고는 한차례 나가고 중단되고 말았다.
법률가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과 관련된 글을 신문에 쓰는 것조차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이번 일은 검찰 스스로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임을 드러낸 셈이 됐다.
이 문제를 다룬 수구언론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인터넷 누리꾼들 사이에서 금 검사를 지지하는 글이 압도적이었지만 수구언론은 양비양시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금 검사의 기고문 가운데 앞뒤 자르고 일부만 떼어내 읽는 이로 하여금 ‘이상한 검사’처럼 비쳐지게 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수구의 시계는 거꾸로만, 거꾸로만 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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