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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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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사는 전직 언론인 스티브 아우팅은 작년 10월 5일 부친의 사망을 신문사에 알리는 과정에서 겪은 체험담을 언론연구기관인 포인터 연구원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부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자’는 제목으로 쓴 아우팅의 글은 요즘 미국신문들이 부음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부음이 미래엔 어떻게 처리될지를 보여준다. 아우팅에 의하면, 미국의 지역신문들은 부음 전담 기자를 한두 명 두고 있다. 부음 기자는 여러 사망자중 중요한 인물에 관해 자세히 취재한 다음 부음면에 특집기사로 게재한다. 부음 기자는 장례 담당자나 사자(死者)의 친구·친인척 등과 접촉해 기사를 만든다. 미국 신문들의 이 같은 기사작성법은 망자를 잘 아는 기자가 부음기사를 작성하는 우리의 언론문화와 좀 다른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의 부음기사에서 또다른 차이는 무명 사망자들의 이름을 부음면에 게재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이다. 지역신문 `덴버 포스트’의 경우 부음기사 한 줄에 16달러를 받는다. 2~3줄을 실으려면 32~48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오랜 기간 언론계에 종사해온 아우팅은 부친이 덴버의 지역유지였기 때문에 부친의 사망이 부음면 특집기사로 처리됐고, 별도의 부음 게재료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 지역신문의 1단짜리 부음기사는 회사 수입에 꽤 큰 기여를 하는 모양이다. 아우팅은 부음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1단 짜리 부음기사는 지역신문사에 상당한 수입을 창출한다고 썼다. 이런 1단 짜리 부음기사는 우리가 아는 1단짜리 조각 광고와 유사한 크기와 모양을 갖고 있다. 우리가 1단짜리 모집광고나 구직광고를 실을 때 돈을 지불하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부음 게재를 위해 달러를 지불하는 모양이다(우리의 신문들은 돈 있는 저명한 인사의 부음기사를 부음광고로 유치하는 것 같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부음 게재도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부음 사이트는 무료로 부음을 올려놓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신문에 연계된 인터넷에서는 29달러면 1년간 부음을 올려놓을 수 있고, ‘레거시닷컴’이라는 사이트는 79달러를 지불하면 사이트가 존재하는 동안 부음을 올려 놓는다.
반 세기 전 미국 신문사에서 ‘부음 쓰기’는 초년 기자들의 통과의례였다고 한다. 신입 기자들은 부음기사 작성을 통해 사망자의 정보를 얻어내고 정확한 기사를 쓰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음 쓰기가 기자의 전문영역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의 전직 탐사 기자 짐 니컬슨은 부음 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니컬슨은 1987년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로부터 부음 부문의 첫 수상자가 됐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묘사해 시민들로부터 ‘죽음 박사(Dr. Death)’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다른 부음 전문기자로는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의 로빈 힌치,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스타 트리뷴’의 트루디 한이 있다.
‘미국의 가장 잘 쓴 신문기사’라는 책에는 니컬슨이 장례 담당자와 동료들의 냉소를 이겨가며 망자 관련 정보를 취재하는 눈물겨운 노력이 묘사돼 있다. 책에 의하면, 니컬슨은 좋은 부음 기사를 쓰기 위해 경쟁지 ’인콰이어러‘의 부음을 꼼꼼히 챙겨봤고, 망자의 가족·친구들을 만나거나 전화인터뷰를 통해 망자에 관한 인간적인 상세한 정보들을 찾아냈다. 그는 평범한 화장실 수리공의 부음기사를 무려 15인치의 분량으로 썼다고 한다(미국 신문은 기사 길이를 인치로 계산한다).
최근 중요한 국내 부음기사로는 강원룡 목사(경향신문 8월18일 20면)나 소설가 박한영(동지 8월24일 21면)이 있었다. 필자회사의 담당기자는 이렇게 큰 부음 기사는 근래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출생에 대한 축하형태가 문화에 따라 다르듯이 부음의 문화도 서로 다른 것같다. 미국 부음기사에 관한 글을 보면서 “우리의 신문사는 아직도 덜 상업화됐나?”고 하는 묘한 의문을 갖게 됐다. 어쨌든 나는 우리의 신문에서 1단짜리 부음기사로 돈을 버는 때가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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