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린의 가상 에세이와 언론의 연쇄 오보


   
 
  ▲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확성은 기자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자 태도이다… 그들은 사실 확인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 기자의 실수는 언론사의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스캐넌이 저술한 저널리즘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구지 강조할 필요도 없이, 뉴스는 검증된 정보라는 점에서 다른 정보와 구분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정확한 기사에 대해 우리사회 아니, 언론계가 너무 관대해 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로버트 칼린이라는 미국의 분석가가 허구로 작성한 북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연설문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면서 국내 유력 신문이 한꺼번에 오보를 저질렀다. 더군다나 보도된 글은 한국에서 뉴스가치가 높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관한 내용이었음에도 9월 25일자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한국일보 등이 주요기사로 다뤘다. 연합뉴스가 전송한 기사에서부터 오보가 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개별 신문사의 외신부에서 체크리스트를 가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사건을 보면서 문득 2003년에 있었던 빌게이츠 사망오보가 떠오른다. 당시 MBC, SBS, YTN 등 방송사들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의 피살설을 오보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들 방송사들은 자막과 아나운서 멘트 등으로 속보로 이 사안을 다루었다. 진원은 이를 가짜로 보도한 CNN 패러디사이트로부터 출발했다. 증권시장이 개장된 시간에 보도된 빌게이츠 사망오보는 경제신문사가 제공하는 뉴스서비스를 통해 증권사로 전달됐고 순식간에 IT주가가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국내 투자가들이 IT주식을 내다 판 반면 외국계 펀드는 주식을 매수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한 증권기자의 말을 빌리면 외국계 펀드가 30분 사이에 엄청난 시세차익이 보았다고 한다. CNN홈페이지만 들어가 봤어도 확인될 수 있는 사안을 한국의 대표방송사와 신문사들이 검증절차 없이 미확인 보도를 한 것이다.

이런 오보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확산 시스템은 무엇인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인트라넷으로 통신사와 경쟁사의 속보가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현대적 뉴스룸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뉴스룸은 보다 진보된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뉴스를 검증하는 장치보다는 뉴스를 정렬하고 낙종을 확인하는 장치에 더 무게가 가 있다. 즉, 정확성 보다는 속도를 위한 시스템이다.

또한 개별 언론사의 뉴스룸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양한 뉴스정보와 통신기사로 네트워크화 되어 있다. 연결된 노드와 링크를 통해 바이러스가 확산되듯이 하나의 잘못된 정보가 순식간에 주요 언론사를 감염시킨다. 여기에 인터넷 뉴스 환경은 뉴스룸 속도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최종 소비자로부터 속도전이 관전되는 온라인 뉴스경쟁체제는 빠른 뉴스가 앞선 뉴스라는 암묵적인 규범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오보가 온라인판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특히 인터넷은 종이신문과 다르게 언제든지 고칠 수 있는 ‘재작성 가능한 미디어’이기에 인터넷상의 일부 기사는 고쳐질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작성된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환경 속에서 언론인은 여과되지 않은 다량의 정보에 둘러싸인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기보다는 통합과 검증에 집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소문, 빈정거림, 그리고 사소한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진실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이야 언론의 신뢰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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