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저출산 위기론


   
 
  ▲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2001년 말경 출산문화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만난 모 일간지 기자는, 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국가적 위기상황이 올 거라면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그 말을 들은 다른 기자들과 관련 기관 사람들은 아직 인구증감률엔 큰 변동이 없으니 괜찮다고 얘기했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현상을 통탄하면서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그 기자의 모습을 보며,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한국이 단위면적당 인구가 많은(삼림면적을 고려하면 더욱) 인구과밀 국가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 그래도 개개인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문화풍토인데, 국가와 언론까지 나서서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저출산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됐고, 놀랍게도 그 기자의 생각은 현재 대부분의 언론이 보여주는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은 저출산 현상을 ‘국가적 위기’, ‘인구재앙’이라고 칭하며 ‘저출산 극복’ 내지는 ‘출산장려’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야당이 각종 출산장려정책을 쏟아내면, 각 언론들은 사설을 통해 그 정도 정책으로 사람들이 아이를 낳겠냐며 실효성이 없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나 정작 언론들이 저출산 현상을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하기까지 어떤 고민 혹은 취재의 과정을 거쳤을까?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인구문제에 대해 이토록 천편일률적인 목소리를 내며 다른 가능성에 대해 점쳐보지 않을 수 있는가. 저출산을 ‘위기’라고 기정 사실화하는 근저에는, 자체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한국 저널리즘의 무지몽매함이 깔려있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 반면 사람들의 소비는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다음 세대가 누릴 몫을 빼앗아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와선 한국 사회도 지속 가능한 발전, 지속 가능한 산업, 지속 가능한 기술, 지속 가능한 경영,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 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됐다. 그것밖에 달리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 가능성의 패러다임으로 보았을 때 자원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므로, 인구감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일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면 생산이 준다고 걱정하지만 소비 역시 줄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적정선을 이루면 된다. 즉, 저출산 현상은 인구감소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변화의 동력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속도다. 저출산 현상은 인구감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세대별 불균형을 초래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적응을 위한 섬세한 정책이 따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청사진도 소위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인구는 는다’ 식의 비관적인 모양새만이 아니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여성과 10대, 그리고 고령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완전고용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커다란 고통 중 하나인 ‘무위無爲’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의 노동권 확보는 큰 과제다. 이처럼 노동인구와 부양인구를 측정하는 연령기준을 변화시키면, 고령화 사회라 하더라도 부양인구가 크게 늘지 않게 된다. 자, 이제라도 언론은 심사숙고 해보는 것이 어떨까. 저출산 현상을 ‘위기’라고 진단하고 출산장려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고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 말이다.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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