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북한제재와 한국의 대북정책


   
 
  ▲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유엔은 지난 14일 무력사용을 일단 유보한 광범하고 엄격한 제재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 대북정책을 다시 다듬어야 하는데 정책입안자들은 다음의 네 가지를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핵 사태의 근원적 책임은 한국에게도 있다. 미국이 1950년대에 다량의 핵무기를 남한에 반입했을 때 북한이 그 철거를 계속 요구했지만 미국과 한국은 들은 척도 안했다.

한국은 그때 즉시 미군의 핵무기도입을 반대하고 이를 철거시켜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북한이 기를 쓰고 핵무기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게 안했으며 오히려 동족을 겨냥한 핵무기 반입을 쌍수로 환영했다. 또 한나라당의 조상인 정치군인들은 그때 핵무기철거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용공과 이적으로 탄압했다.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다.

둘째, 지금의 파국은 부시의 비타협적 대북압살정책의 산물이지 한국의 햇볕정책 탓이 아니다. 반북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이 핵폭탄으로 돌아왔다며 대북강경정책선회를 주장하고 있으며 그런 논리를 두둔하는 언론도 있다. 그것은 논리의 지나친 비약이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긴장완화와 화해협력을 위해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정책이다. 미국도 그 뜻에 동조하여 클린턴정부 말기에 대북포용정책으로 전환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뿐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대북 훈풍은 다시 광풍으로 돌변했다. 그렇게 되니 햇볕정책 창시자인 김대중 대통령이나 그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북미간의 첨예한 군사대치상태와 한미군사동맹관계를 그대로 둔 채, 남한의 대북경제협력추진만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고자 한 것은 햇볕정책의 오산이었다. 미국의 세찬 바람은 그대로 부는데 한국의 햇볕만으로 북한의 외투를 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셋째, 부시의 궁극적인 대북정책목표는 ‘김정일체제 죽이기’인데 북한은 결코 손들지 않을 것이니 무력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야한다. 부시가 강조하는 ‘외교’도 실은 장차 군사행동을 위한 명분 쌓기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싫든 좋든 한국이 적어도 앞으로 2년 간 부시를 잘 견제하지 않으면 한반도는 전란의 화를 입을 위험이 크다.

만약 한국의 선택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라면 대북포용정책은 버릴 것이 아니라 보다 자주적인 것으로 승화돼야 한다. 대북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대미관계보다 더 높은 가치로 받들고 후자가 전자를 압도할 수 없도록 그 기조를 재조정해야 한다.

넷째, 보이는 작은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안 보이는 큰 국면을 읽어야 한다. 그간의 북핵 소동으로 우리와 남들이 무엇을 얻고 또 잃었는가를 한번 살펴보자.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다지만 그로 인한 막심한 고난과 고립을 견뎌내야만, 바라는 체제안전을 기할 수 있게 됐다. 중국은 북의 핵실험으로 다소 체면을 구겼지만 한반도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강국의 자리를 굳혔으며, 장차 미, 일, 러의 곰들이 재간을 부릴 때 돈을 챙기려 할 것이다. 러시아는 일단 한반도 주변강국으로 대접받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일본은 이 기회에 한반도 주변의 중요국가로 급부상했을 뿐 아니라 우경화와 재무장에 안성맞춤의 구실을 얻어 큰 실리를 챙겼다. 미국은 북핵 저지에 실패하고 한반도에서 중국의 견제를 받게 된 것 같으나, 충실한 맹방인 일본의 위상을 올려주고 장차 재무장하여 미국의 전위대로 중국에 맞서는 나라가 될 기초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에 제동을 걸고 남한의 보수화를 부추김으로써 주한미군의 영구주둔과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연장을 보장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별 소득 없이 모처럼 공들인 대북화해협력사업 추진만 후퇴를 보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 됐다.

언론은 노 정권 헐뜯기에 바빠, 보이는 현상보다 안 보이는 보다 큰 국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국민과 더불어 가늠해보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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