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기류를 넘어 대화의 숨통 트자

마음이 풍요롭고 고운 단풍으로 아름다워야 할 가을이 몹시 스산하다. 날씨 탓만은 아니다. 북 핵실험에 이어 북 제재조치에, 한국과 미국이 선제 북 공격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는 외신에, 그리고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 중인 공안사건 보도에 더욱 움츠러든다. 마치 한반도의 역사시계가 수십 년 전으로 되돌려진 느낌이다. 이러한 냉기류를 뚫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처음으로 이달 14~15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남북 언론인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사상 처음 열리는 이 남북 언론인 토론회에 언론계 안팎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2000년 역사적 6·15선언 이래 당국과 민간 여러 분야의 잦은 교류에도 유난히 언론인 교류는 더디었다. 2000년 46개 언론사 사장들의 방북과 몇몇 방송프로그램 공동제작이 있었지만 단편적인 언론 교류였다. 그 원인의 하나로 남북 언론의 현실적 특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측의 언론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남북교류협력의 동일한 사안마저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치하여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로는 북측의 불만을 살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북측에서는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북한 헌법 67조)고는 하지만 관영 매체 특성상 당과 기관의 공식 입장만을 대변한다. 이 같은 사정 탓에 이번 토론회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통일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서독 언론도 동방정책 초기인 1970년대에 ‘퍼주기’를 비롯한 이념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통상, 통항, 통행정책으로 동독 왕래가 잦아진 서독 언론인들은 1980년대 들어 프로그램 공동 제작, 공동 취재를 활성화 시켰고 좌담회를 열어 독일인들의 민족 동질성 회복과 이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 마침내 독일은 1990년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인들은 동서독을 왕래 교류하면서 서로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적극 노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독 정부의 대(對)동독 화해정책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 측면이 있더라도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보도하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 당국 간 공식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에는 비공식 대화채널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남북 언론인들이 거울 삼아도 좋을 대목이다.

남북 언론은 서로 흠집 내고 악의적인 왜곡 보도를 일삼던 과거의 대결구도로 되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남쪽 언론들은 국익과 남북 교류협력 같은 민족의 미래와 관계된 문제는 침소봉대해서 쟁점으로 부각시키기보다는 보수·진보의 이념을 초월해 큰 틀에서 사고하고 보도하는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안보상업주의 논란은 영원히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남북 언론인들은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양측의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는 서로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일종의 보도 준칙을 합의하여 마련하는 것도 긴요하다. 이것은 소모적인 남남, 남북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첫걸음으로, 이번 토론회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정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엊그제엔 남북 문인들이 금강산에 모여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공식 결성했다. 1년5개월에 걸친 산고와 북 핵실험의 초대형 악재를 극복하고 민간단체끼리 구성한 첫 남북 단일조직이어서 더욱 뜻 깊다. 또 분단 이후 내용과 형식면에서 다른 길을 걸어온 남북문학이 직접 교류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어 일제강점 이래 이질화된 국어를 통합해 모국어 공동체를 가꿔 통일로 가는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남북 언론인들의 만남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북의 이질화된 언어와 문화를 복원하고 이념 차이를 극복하는데 어느 분야의 민간 교류보다도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시행착오와 혼란을 최소로 줄이려면 상대방을 정확히 인식하고 공감하는 영역을 넓혀나가야 한다. 여태 남북 언론인들은 당국자 회담이나 민간끼리의 만남을 취재하기에 바빴지 정작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눈 적은 없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바로 깜짝 놀랄만한 좋은 결과를 얻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좋은 결실을 얻으려면 가슴 툭 터놓고 자주 만나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기에 상호간의 인식과 이해를 넓히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민족적 위기에 부닥친 상황에서 어렵사리 마련한 이번 남북 언론인 토론회가 언론인 교류 정례화로 이어져야 한다. 북 핵실험 이후 전개되고 있는 냉기류를 훌쩍 넘어서서 통일의 물꼬와 대화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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