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386간첩단'이란 이름 붙이기 왜?


   
 
  ▲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북한의 핵 실험에 뒤이어, 간첩단 사건이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단국가에서 간첩단 사건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사안의 진위여부를 떠나 다른 차원에서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층으로부터 친북좌파정권으로 비판받고 있는 참여정부에 의해 밝혀졌다는 점, 간첩단에 연루된 것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이 제도권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의 조선일보 인터뷰와 맞물리면서 여권 내 권력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이전 사건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이 ‘386정치세력’을 축으로한 정치적 갈등구조로 틀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 언론보도에서 간첩단과 연관된 세력으로 가정되는 것도 386정치세력이며, 국정원장의 퇴임압력을 행사한 것도 386정치세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서 정치세대간 갈등을 포함하고 있다.

386은 학생운동의 제1세대인 4·19세대, 2세대인 6·3세대를 뒤이어 등장한 정치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유사한 정치사회화를 경험한 세대집단으로서 그 숫자 안에 세대의 공통분모가 들어있다.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이 개념은 당시 유행하던 386컴퓨터를 비유해서, ‘3’은 1990년대 당시 30대를, ‘8’은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1980년대 학번을, ‘6’은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뜻한다. 즉,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1990년대에 30대였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이다.

좁은 의미로는 5공화국 시기인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을 이끈 학생운동 세대로 한정하기도 한다. 보다 최근에는 386세대에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 있는 자로서 정당, 국회, 행정부 등에서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자를 일컫기도 한다. 이처럼 386이란 용어는 세대 또는 세력을 지칭하는 기호이지만, 그 대상이 포괄적이다.

그러나 이번 간첩단 사건을 다루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386에 대한 과잉 일반화를 범하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는 이번 사건을 ‘386간첩단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른 신문과 방송이 ‘간첩단 사건’, ‘일심회 사건’, ‘간첩사건’ 등 중립적으로 사건명을 붙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건에 대한 이름은 수용자들이 사건을 해석하는 틀로 작동하기에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지어져야 한다. 보도의 편견과 완전성의 위배는 제목달기나 이름 짓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작업은 언론책무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세 신문들은 386과 非386을 구분지음으로써 ‘너(386)와 우리(독자, 신문사, 나머지 정치세력)’로 ‘이항대립’시킨다. 이런 해석 틀은 이들 언론사들이 목표로 한 특정 정치세력의 범주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 일반에 세대 간 정치 편견을 양산할 수 있다. 또한 ‘과부 살해사건’과 같이 선정적이고 언론사의 편견을 드러내는 세련되지 못한 이름붙이기이다.

물론, 386 정치세대가 연루된 간첩단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같은 이름이 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특정 세대와 연관된 정치사건으로 일반화시키기에는 상황이 너무 특수하다. 구속된 인사들의 면면이 386의 대표성 또는 표준적인 인사들인지도 의문스럽다. 386을 제도권 정치권력의 전유물로만 치환하는 것도 유감스럽다. 더군다나 청와대와 국회에 포진한 것으로 표현되는 ‘386정치세력’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를 명확하게 기술하지는 않는다. 단지 ‘세대’라는 큰 자루에 모두 담아 손쉽게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간첩단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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