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방송 KBS가 또다시 사장 선임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러 달 공석으로 남아 있던 사장직이 마침내 정연주 전 사장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사장 선임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와 이에 대한 KBS노조, 이사회의 일부 인사, 그리고 일부 시민 단체의 연이은 반발은 심상치 않다. 연임되는 정 사장의 향후 진로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 KBS 사장직을 둘러싼 충돌이 빚어지고 있는 것은 이사회의 사장선임 과정상 불투명성, 특정 인사(정 전사장)를 선임하기 위한 KBS이사회의 구성, 근본적으로는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힘을 가진 방송위원회의 구성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KBS이사회가 특정인을 선정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의심되는 ‘5배수 추천방식’을 채택했다든지, 사장 선정과정에 참여했던 이사 11명중 3명이 선임 직후 이사직을 사퇴했다는 사실은 선임과정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KBS이사회는 사원들의 뜻을 수렴하기 위해 노조와 함께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를 운영하려다 이를 배제했다. 비록 사추위가 법적 근거를 갖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사장 후보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구였다. 이런 의견 수렴절차를 배체한 채 KBS이사회가 사장 후보자 선정과정을 강행했다. 이런 모습에 사원들은 이사회의 사장후보 면접에 물리적으로 반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한 평가를 놓고도 이사회와 노조-시민단체는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이사회측은 “사장후보 선정과정에서 공공성 독립성 전문성 경영능력 리더십 도덕성 등을 고루 살폈다”고 포괄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정 전사장의 재임 중 KBS의 경영평가는 다른 방송사들보다 낮았고, 대규모 적자로 임원 임금을 삭감하기로 했다가 다시 돌려받는 비도덕성을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은 정치색이 강한 방송위원회의 결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집권당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는 방송위원회가 KBS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미치며, 이어 KBS이사회가 사장을 선임한다. 이런 구조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가진 인사가 KBS 사장에 선정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 전 사장에 대해 한나라당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코드에 맞는 인사를 앉히려 한다”고 비판한 것은 근거가 없진 않을 것이다. 앞서 방송위는 공영방송인 EBS에 구관서 전 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내정함으로써 EBS노조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사례도 당초의 ‘EBS 공사화’ 방향을 거스르는 것으로 방송위의 인사 천거, 나아가 청와대측의 의중(허락)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론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방송은 한정된 주파수를 사용하는 공공재이다. 이런 전파를 사용하는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 공정성을 존재 근거로 삼는다. 국민은 공영방송으로부터 질 높고 공정한 프로그램을 제공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이제 정치권력은 공영방송의 코에 꿴 고삐를 풀어주어야 한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영방송의 사장을 선임하는 제도를 전면 혁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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