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국방의 요체는 자주이다


   
   
한국은 지금 자주와 동맹의 문제로 심히 고민하고 있다. 언론도 물론 예외는 아니지만, 민족자주론에 맞서 자주는 허황되고 실속 없는 것이며 동맹만이 살길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연초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연내에 매듭짓겠다고 밝혔을 때는 큰 물의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7월에 그 환수시기로 2012년이 제시되자 소위 ‘원로’를 자처하는 퇴역 장성들과 전직 고위외교관들이 떼를 지어 앞장서서 자주보다 동맹이 더 중요하다며 반대에 나섰다.

또 10월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고 유엔이 대북제재를 결의하자, 대북포용정책의 공과와 지속여부는 물론 대북제재 특히 미국주도의 PSI참여범위를 놓고, 남북관계를 염려하는 자주파와 대미관계를 중시하는 동맹파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통일, 외교통상 및 국방의 3부장관 사임에 따른 후임 인선문제도 자주와 동맹의 대립적 시각 때문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자주’는 남의 힘을 빌리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일을 자기 이익에 따라 자기 뜻으로 처리하는 자세를 말하는데, 분단 후 남북은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원칙을 1972년의 7·4 공동성명,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 화해협력 합의서 및 2000년의 6·15 공동선언으로 확인한 바 있다. 또 북한의 고려연방제통일방안(1980년) 뿐 아니라 남한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년)과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94년)도 자주통일의 원칙을 천명했다.

그런데 남한에는 민족자주가 안보를 해칠까 우려하여,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장성에게 맡기고 있는 수직적이며 예속적인 한미동맹체제를 고수하자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동맹체제는 영국이 1936년 이집트에 명목상 독립을 허용하되 이집트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유보했던 사례나 구 만주국과 일본의 관계와 유사한 체제이다. 그것은 완전한 주권독립국 간의 동맹관계라 할 수없는 기형적 관계이다.

한국인들의 숭미사대성향은 외교문제 인식에 있어서도 뚜렷하여, 그 동안 북한이 먼저 1994년의 북미 핵 기본합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또다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왔다. 그러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TV 인터뷰에서 북미 기본합의는 2002년까지 양측 간에 매우 잘 지켜졌다며 북한이 먼저 약속을 어겼다는 부시의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며 엉터리”라고 반박했다.

1994년의 북미기본합의를 먼저 깬 것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면 지금의 북핵사태의 책임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말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미국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보수언론과 유신잔재세력은 그런 주장은 한미동맹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우리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교나 국방의 요체는 자주이다. 동맹은 자주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때문에 자주를 위해 동맹을 버릴 수는 있어도 동맹을 위해 자주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의 외교나 국방은 오랜 동안 이 점을 혼동해왔다. 구한말 병자수호조약 체결당시 중국이 두려워 ‘조선은 자주의 나라(自主之邦)’라는 표현을 꺼리던 사대주의의 뿌리는 아직도 단단하다. 한국에 아직 명장이나 명외교관이 나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제적 명성을 얻은 한국의 첫 외교관이다. 그러나 반 장관이 만약 미국에게 맹종하던 군사독재정권의 외무장관이었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의 유엔총장 선출에 찬성했겠는가? 한국이 유엔총장을 배출한 것은 그동안 김대중, 노무현의 두 정부가 미국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나름대로 추진한 민족자주외교의 성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반 유엔총장은 앞으로 강대국간 세력다툼에는 초연한 입장에서 착실히 공적을 쌓아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한미동맹관계에만 얽매이지 말고 민족자주외교를 더욱 발전시켜 남북화해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엔은 물론 여러 국제기관에 보다 많은 한국인들을 진출시킴으로써 나라의 위상도 높이고 안보도 공고히 다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맹도 없으며 오직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따름이라고 했다.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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