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실험 발표직전 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한 정보통신 관련 학술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 김책 공과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멀티미디어 탐색 기술이 흥미로 웠고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한의 인터넷 서비스 기술을 경청하는 북한 학자들의 눈빛도 새로웠다.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급변하는 정치정체로 수차례 연기되다 어렵게 성사된 학술교류였지만, 그 행사는 학회 회원들로부터 큰 관심은 받지 못했다. 어쩌면 ‘교류’ 그 자체가 더 이상 사회적 주목을 끄는 강력한 이슈가 못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관심을 넘어서 우리사회에 남북민간교류에 대한 극단적 폄하로 나타나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부에서는 교류 자체를 전면 부정하거나 이를 과도하게 국내 정치의 함수 속에 넣어 계산하는 방정식을 적용한다.
민간차원에서 벌어지는 남북교류 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먼저, 북한정권의 예측불가능한 정치적 행보를 들 수 있다. 미사일 실험에서부터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정치적 선택은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 이미지를 만들면서 남북교류 확대를 주장해온 국내 정치세력의 목소리를 좁힌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한은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리되어 있어서 민간교류의 주체가 명확하지만, 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종속되어 있는 북한의 경우 민간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셋째는 교류의 내용과 방식이 북한 정부에 의해 주로 통제된다는 데 있다. 넷째, 대부분의 남북 교류에는 직간접적인 대북 지원이 동반되는데, 이것이 민간지원 효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이다.
이 같은 전제는 남북 민간교류의 제약점이 분명하지만, 교류의 주체인 민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구조적 변수이다. 대부분의 민간교류는 이 같은 구조적 변수를 전제로 한 가운데 전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민간교류를 정치적이고 외교적 맥락 속에서 틀 지우고 교류의 주체들에게 국가 정책적 책임성을 부여한다. 또한 ‘정부 간 협상’ 또는 ‘정치권 교류’의 범주 속에서 구조적 변수에 초점을 맞춘다.
10월28일부터 열린 ‘남북언론인 통일토론회’에 대한 일부 언론보도에서 이 같은 시각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언론인 단체들이 민간차원의 공동사업으로 기획되었다. 비록 언론체제가 전혀 다르고 언론인의 사회적 역할에도 큰 차이가 나지만, 이 토론회는 남북 간 언론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이 행사가 많은 언론보도에서 상당히 외면당하거나 비판받았다는 점은 아쉽다.
이 행사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일부 일간지와 미디어 전문지, 그리고 인터넷매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일부 신문은 칼럼에서 남측 대표들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정치적 유감표명을 하지 않은 채 공동성명을 발표한 점을 비판하는 한편, 토론회 발표자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무관심과 비판의 내면에는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요구가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이들 교류자들이 남한의 관점에서 북한 사회에 대한 고발자로서 기능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한편, 민간교류의 능력을 넘어서는 정치적 협상자로서 기능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 간에는 다양한 교류나 거래활동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저 마다의 기능이 있다. 하나의 중요 사안이 모든 것을 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대화채널의 틀과 한계 속에서 남북 사안이 해석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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