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고문실'과 기자의 사회화


   
 
  ▲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장  
 
영·미계 언론인들 사이에는 ‘중국식 고문실(Chinese torture chamber)’이라는 묘한 표현이 은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표현은 52년전 미국 루이지애나주 소재 튤레인 대학교 뉴컴 대학의 워런 브리드 교수(Warren Breed, Newcomb College, Tulane University)가 쓴 ‘뉴스룸에서의 사회적 통제:기능적 분석(Social Control in the Newsroom:A Functional Analysis, 1955)’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주로 젊은) 기자들이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의 편집 방향에 어떻게 순치(馴致)될 수 밖에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한 통찰력 있는 글이다.

워런 브리드 교수가 정기간행물 ‘사회를 움직이는 힘(Social Forces)’의 1955년 5월호에 쓴 10쪽짜리(326∼335쪽)의 짤막한 이 글은 오늘날 미국 언론사의 뉴스룸(편집국, 보도국)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사의 뉴스룸에서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워런 브리드의 글은 하워드 텀버(Howard Tumber)가 편집한 ‘뉴스론 독본(News:A Reader, 1999)의 10장(79∼84쪽)에도 잘 요약돼 실려 있다.

나는 왜 하필이면 ‘중국식 고문실’인지 그 연유를 알지 못한다. 브리드가 쓴 아래의 대목을 읽어보면 이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 “신문을 소유하는 발행인은 순전히 기업적 기준에서 기자들로부터 순종을 기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그는 과오를 이유로 기자를 해고하거나 좌천시킬 힘을 가졌지만 그의 힘은 3가지 요인에 의해 제약 당한다. 첫째 신문은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둘째 신문에서 해고는 드문 현상이며, … 그렇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처벌을 두려워 한다. 언론업계 안에서 전해져 온 한 신화에 의하면, (편집방향을 벗어나) 옆길로 간 한 저명 기자는 살인 등 중요 사건 취재에서 해임돼 부음담당 기자로 좌천됐다. 그는 뉴스룸 내 ‘중국식 고문실’에 배치됐다 (텀버, 80쪽).”

필자는 기자협회보 2006년 9월 20일자 6면 기자칼럼 ‘부음기사의 양과 음’에서 부음기사를 중요시하는 사례를 논한 바 있다. 하지만 동서양의 언론계에서 부음기사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인용문은 사건 담당 기자에게 부음기사를 쓰도록 업무를 바꾼 것은 소위 ‘물 먹이는’ 좌천인사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인용문은 아울러 미국 언론계에서도 이런 강등 인사를 통해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자들을 순치시키고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

왜 기자들은 소속 언론사의 편집방향에 동조하게 되는가? 브리드 교수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우리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우선 기자들은 편집방향에 맞지 않는 기사로 인해 받게 되는 인사적 불이익을 걱정한다. 이 때문에 아예 자기검열을 한다. 다음으로 편집국내 고참 기자로부터 여러 가지 조언을 받아 왔기 때문에 그들의 편집노선을 존중하게 된다. 기자들은 신분 상승을 위해 회사측 편집방향에 맞는 기사를 적극 개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의 편집방향을 우회하는 방법은 전혀 없을까. 다시 브리드의 말을 보아도 머리가 끄덕여진다. “기자들은 편집방향이 자세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넣을 수 있으며, 직접 발품을 팔거나 전화 취재를 통해 수집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아울러 기자들은 경쟁지에 정보를 넘겨 기사화시킨 뒤 윗사람에게 이 정도로 중요한 것이니 보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요청할 수도 있다. 전문화된 정보나 자발적 취재에 근거하는 기사의 경우, 기자는 재량범위를 넓힐 수 있고 저명 기자들은 병아리 기자보다는 편집방침을 넘나드는 것이 용이하다.”

‘뉴스룸에서의 사회적 통제’는 기자들이 소속 언론사의 편집방향에서 일탈하기 어렵도록 만든 구조적 문제나 언론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브리드 교수는 기자들이 이처럼 언론사의 편집방향에 동조하게 되는 과정을 ‘기자들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reporters)’라고 불렀다. 나는 ‘사회화’라는 부드럽고 우회적인 용어 대신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이 글에서 군데군데 ‘순치’나 ‘동조’라는 표현을 썼다. 기자들의 사회화와 편집방향 일탈요령에 관한 브리드의 글에 대한 귀하의 반응은 어떤가. 필자는 이 글에 대해 “동서양의 우리네 기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너무나도 예리하게 노정했다”는 논평을 가하고 싶다. 설원태 경향신문 여론독자부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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