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태가 주는 교훈

한겨레신문사가 모진 시련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태기 대표이사 사장의 오귀환 편집국장 전격 경질과 곽병찬 신임 편집국장 지명으로 촉발됐다. 그러나 편집국 기자들은 신임 편집국장 임명동의안을 부결했다. 정 사장의 선택을 기자들이 거부한 것이다. 정 사장은 13일 오전 임원회의에서 사의를 표명했고, 한겨레신문사는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결과적으로 정 사장은 논란만 남긴 채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 사장의 독단과 돌출 행동에서 비롯됐다 할 수 있다. 정 사장은 지난달 30일 임원회의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의욕 상실과 건강 문제가 그 이유였다. 임원들은 만류했다. 3년 임기 중 1년밖에 남지 않은데다, 신임 사장 선출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우려돼서였다. 정 사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5일 긴급 이사회에서 사의를 번복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새 편집국장을 지명했다. 사의 번복 3시간 만이다. 한겨레 편집국은 일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정 사장은 한겨레 최고경영자로 2년간 재직했다. 그동안 편집국장을 무려 세명이나 지명했다. 첫번째 권태선 전 편집국장은 임기 3년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1년 3개월 만에 물러났다. 정 사장은 두번째로 오귀환 편집국장을 영입했다.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회사를 떠났던 이다. 그러나 그 역시 불과 7개월 만에 경질했다. 갑작스런 사태에 편집국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 국장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실체조차 알 수 없었다. 정 사장은 편집국 기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일부 기자들은 족벌언론 사주의 전횡과 다를바 없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세명의 편집국장은 정 사장 스스로 지명한 이들이다. 정 사장 스스로 자신의 인사 실책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정 사장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 책임을 “신문 잘못 만든” 편집국장에게 떠넘겼다.

임명동의 투표의 절차적 오류를 문제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로 젊은 기자들이었다. 정 사장은 당초 임원들의 보직 사퇴서를 일괄적으로 받았다. 그래놓고 오 국장의 사퇴서만 선별 수리했다. 사실상의 해임이었다. 하지만 편집국 기자들의 해임동의 투표도 거칠 수 없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76.1%에 머물렀다. 과거 80%를 넘던 투표율과 비교되는 수치다. 이는 원치 않는 투표를 강요당한 기자들의 고민의 흔적이다. 절차상 오류를 지적하며 아예 투표를 보이콧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상황은 어지러웠다. 결국 편집국 기자들은 곽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를 아슬아슬하게 부결시켰다. 찬성 73표, 반대 72표로 찬성이 한표 더 많았다. 하지만 무효표가 5표 나와 과반을 넘지 못했다. 곽 후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정 사장에 대한 신임을 묻는 투표로 성격이 변질됐다. 이는 다름아닌 정 사장 스스로 만든 상황이다. 정 사장을 향한 젊은 기자들의 분노는 높았다. 그 분노가 당초 예상과는 다른 부결 사태를 빚은 것이다.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 있다. 최고경영자의 독단적인 행태와 돌출적인 행동이 조직을 얼마나 큰 위기로 내모는 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신문사는 이제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아직 마땅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한겨레는 내년 5월15일이면 창간 20년을 맞는다. 어엿한 성년으로 성장했다. ‘성년’ 한겨레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란다. 한겨레에게는 여전히 시대가 요구하는 책임과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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