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태평로1가 25번지의 두 풍경

언론노조 위원장들의 단식농성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25번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주소다. 이름하여 한국언론회관, 또는 프레스센터는 목하 농성 진행 중이다.

첫 번째 풍경. 2월 12일 오후 두시, 공사가 한창이다. 어쩌면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저 멀리 남도 끝자락, 해남에서도 조선시대에 심었다는 아름다운 노송 앞에 공무원 노조의 천막 사무실이 생겼으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그런 게 생기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랴. 50∼60명의 장년들이 그 천막 안에 모여서 단식을 하고 있다. 한국을 좌지우지하는(이 말은 어폐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른바 조중동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사 노조 위원장들이다.

한미 FTA 때문에 반성을 하고 있단다. 그렇다니 나도 불을 질렀다. 지난 토요일, 판사들의 초청으로 한미 FTA에 관한 강연을 했다. 정말 놀란 것은 한미 FTA에 포함돼 있는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판사들 모습이다. 실제 피해로 친다면 그리 걱정할 것이 없는 미국의(이 나라는 1994년 나프타 이후 12년 동안 정부도, 기업도 소송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판사들이 사법권 침해를 이유로 성명을 냈다는 얘기를 전하는 내 마음은 그 날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닥쳐야 아는 법이라지만 이건 분명히 언론 탓이라고, 나는 굶고 있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다그쳤다. 단지 판사들의 자존심일 사법권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기본적 권리도 초국적기업의 이해에 따라 간단하게 무너질 수 있는 이 조항에 관해 판사들이 모른다면, 그것은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혐의였다.

해답은 간단하다. 수십 년, 어쩌면 백년도 더 우리 손발을 묶어 놓을 한미 FTA의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면 된다. 실로 안타까운 연예인의 자살만큼만 호기심을 가지면 된다. 단지 모르기 때문에 초국적기업에 국민이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농성
‘하얀 거탑’ 18층에는 또 다른 농성이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다. 이들은 사실을 알리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알려서 문제다. 아니, 정확히는 알리려 했기 때문에 문제다. 세계화 시대 우리의 자랑스러운 내셔널 챔피언, 삼성의 2인자에 관한 기사를 사장이 인쇄소에서 들어냈기 때문이다.

사실과 품격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맹신’(?)이 아직도 덕지 덕지 붙어 있는 조그만 주간지 기자들이 거리로 내 몰리고, 급기야 천막마저 철거 당해 여기, 태평로 1가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그들이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벼락처럼’ 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내 생각에 뻔한 결론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기자로 사는 이유일 터이다. 이제 사실을 말했다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날 며칠을 두들겨 맞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처럼 사실에 목 매지 않는, 그 수많은 기자들은 달콤한 당의정의 표면에서 겨울의 스키를 타고 있다. 그들은 이미 지식인도, 선비도 아니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일 뿐, 전혀 같이 아파 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감히 도전해 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걸 익히 알기에 시력, 또는 지력이 쇠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들의 노조위원장들이, 그리고 동업자들이 이리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는데,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이 그 사실 조차도 모를 수 있을까?

희망이라며 난리를 치며 맞았던 새천년을 우리는 그렇게, 이미 7년 동안 견디고 있다. 세계화시대 국내외 거대 자본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소수의 기자들이 농성하며 그렇게 견디고 있다.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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