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간관계' 보편화로 '공간'도 변화

미디어 트렌드 읽기<1>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공간의 변화


   
 
  ▲ 엄호동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반세기 동안 대학로를 변함없이 지켜온 ‘학림다방’에서 이색 송년회가 있었다. 문을 연 지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세밑에 열린 송년회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인간관계’로 치닫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추억을 선사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과 십수년동안 손때 묻은 나무 탁자 그리고 클래식 LP판이 존재하는 추억의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수많은 담론을 논했던 그때의 다방 문화는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과거 ‘관계’를 맺기 위한 대표적 공간이었던 다방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대에 맞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의 변화에는 미디어의 변화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90년대 초반 사업을 하고 있던 한 선배가 미국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 하는 말이 “앞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 그 얘기를 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일명 ‘삐삐’로 통했던 무선호출기 사용이 보편화 되어 있었던 상황인지라 ‘관계’의 대표적인 공간은 각 테이블에 전화기가 놓여있는 안락한 분위기의 카페가 트렌드였다. 이때의 공간은 무선호출기를 매개로한 만남이 대부분이었기에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테이크아웃’ 형태의 공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곳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루 전에 만남을 약속하고 다방과 같은 공간에 모였던 과거 유선전화의 시대에서 약간의 이동성이 보강된 무선호출기 시대로 넘어 오면서도 이러한 공간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의 급속한 보급으로 관계의 공간도 잇따라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콩다방(커피빈)’이나 ‘별다방(스타벅스)’ 등과 같은 외국계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확산된 또 하나의 계기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다방이나 카페 등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콩다방’과 ‘별다방’의 경우에 공간이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테이크아웃’ 문화가 우리 생활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미디어의 변화를 읽고 그 선배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지금에 와서야 내게 묻는 질문 중에 하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될까? 과연 공간의 변화만 있었을까? 혹시 ‘관계’의 깊이도 덩달아 변화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유선전화 시대에서 무선호출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제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매개로한 ‘디지털 인간관계’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통을 위한 대화는 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굳이 ‘다방’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모이지 않고도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현실 공간에서의 ‘관계’가 미디어를 통해 가상 공간으로 ‘테이크아웃’ 되고 있는 현상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간적 변화가 과연 우리의 사고를 앞으로 어떻게 변화 시킬지 무척 궁금할 따름이다. 엄호동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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