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간관계, 질적 '깊이' 유지하며 적절한 활용을

<2> 미디어의 변화에 따른 관계의 변화



   
 
  ▲ 엄호동 경향신문 미디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현실 공간에서의 ‘관계’가 미디어를 통해 가상 공간으로 ‘테이크아웃’ 되고 있는 현상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얘기를 지난 1편(기자협회보 2월 15일자)에서 피력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테이크아웃’된 우리들 인간관계 또한 변화를 외면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필자는 생일을 맞았다. 출근을 해서 컴퓨터를 켜자 많은 지인들로부터 인터넷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으로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도 깜박 잊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고 나서 ‘디지털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유인 즉 인터넷 메신저에 지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의 대화창에 내 생일을 알리는 아이콘이 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와 미디어라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지인들은 그 아이콘을 보고 각기 다른 미디어를 통해 나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송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메일로는 인터넷 회원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인터넷 업체에서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축하해 주고 있었다. 이는 결국 내 생일마저도 컴퓨터가 개입해서 해마다 이날만 되면 친절하게도 나와 내 지인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중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수첩으로 통했던 지인들의 개인정보 저장 공간에서 이제는 미디어의 저장 공간을 활용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과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관계’가 양적으로 상당히 넓어졌지만 반면에 ‘관계’의 깊이를 생각해 볼 때 그다지 즐거울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비교적 가까운 몇몇의 지인들과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비대면의 네트워크로 묶여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컴퓨터와 미디어로 종속된 인간관계가 그리 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의 변화로 인해 생긴 ‘디지털 인간관계’에서는 ‘관계’의 생성과 단절은 면대면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관계’보다는 훨씬 손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미디어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은 자기중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나를 중심으로 네트워킹된 ‘관계’가 버튼 한번과 클릭 한번으로 얼마든지 생성되고 단절될 수 있다.

얼마전 보도에 따르면 미니홈피 서비스인 싸이월드와 메신저 서비스인 네이트온 가입자가 모두 2천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MSN의 경우도 현재 전세계적으로 무려 2억4백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휴대전화의 보급도 이미 4천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렇듯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에 항상 접속해서 어느 누구와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도록 온라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배터리가 나간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없는 곳에 있을 때 우리들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해 접속이라는 울타리에 우리 스스로를 종속 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처럼 가상의 공간으로 ‘테이크아웃’ 되어버린 온라인 상황에서 인간관계 활동은 우리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시키고 있다.

그러나 ‘테이크아웃 커피점’인 ‘별다방(스타벅스)’이나 ‘콩다방(커피빈)’에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면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결국 모든 현실공간이 가상공간으로 ‘테이크아웃’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일 수 있다. 아무리 미디어가 진화 한다고 해도 물리적 공간에서 서로를 느끼고 존재를 확인하면서 관계하는 인간적인 요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네트워크로 대변되고 있는 미디어에 종속되어 집착하는 모습보다는 이미 생활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디어를 적절히 통제하고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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