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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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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피랍돼 살해당한 김선일씨의 죽음은, 명분도 없이 여론을 무시한 채 이라크 파병을 강행한 정부가 불러온 예견된 비극이었다. 그리고 2007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던 윤장호 하사가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테러로 인해 숨졌다.
파병을 하는 것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조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폭력과 살인과 테러, 군비증강 등 우리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피의 보복’을 부르게 될 것이라는 시민사회의 경고를 정부와 국회는 번번이 무시했다. 윤 하사의 죽음은 한국군 파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실체를 우리 사회가 직시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전쟁은 인류의 재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비참하고 잔혹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미국은 지속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원하면서도, 전쟁의 공포스럽고도 추악한 실상을 가리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와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전쟁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마치 전자오락 모니터와 같이 무기만이 등장하는 전쟁 시뮬레이션이라든지, ‘악의 세력 응징’이나 ‘평화유지’ 등과 같은 용어를 내세운 전쟁 홍보 전략, 그리고 차별 받는 여성과 소수민족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식의 거짓 선전 등이 그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고, 파괴된 자연과 오염된 식수도 보이지 않고, 흉흉해진 사람들의 마음 속도 이해하지 않으며, 전쟁 후유증 속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 이른바 ‘깔끔한 전쟁’이라는 기만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아닌 언론이다.
언론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가담하거나 지원하는 세력의 나팔수 노릇만 하게 되면, 시민들은 언론에 유포된 거짓된 이미지에 혹해 전쟁의 실상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게 된다.
파병도 마찬가지다. 전혀 검증된 바 없는 ‘국가의 이익’이란 용어를 내세운 채 한국군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이 전개됐다. 전쟁이 발발하고 진행중인 분쟁 지역에 파병을 하면서도, 전투병이 아니니까 괜찮다는 무심한 이야기를 명분인양 들이댔다.
파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연 파병을 해야만 하는가, 파병이 가져올 단기적 장기적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가, 파병되는 지역의 현황은 어떠한가, 군인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가 등에 이르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다수 언론들은 나팔수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파병 동의안과 파병연장 동의안이 속속 국회를 통과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우리 군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에도 파병을 할 예정이다. 레바논에 파병되는 군인들은 정찰, 감시, 군수기지 건설, 경계 등의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고 한다.
윤 하사의 비보를 접하고, 아프가니스탄 다산부대에서 윤씨처럼 통역병으로 근무했던 한 대학생이 자신이 겪은 현장을 고발함으로써, 비로소 그 동안 정부가 만들어내고 언론이 유포시킨 파병의 ‘이미지’와 ‘현실’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윤장호 하사도 파병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 받지 못한 채 지원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윤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숨기어 온 파병에 관한 진실을 상세히 밝히고, 레바논 파병 결정을 비롯해 파병 연장을 취소하고 철군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은 파병의 실체를 캐내고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평화유지, 평화재건이라는 말은 허울좋은 명목일 뿐, 파병은 실상 전쟁의 연속이며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하고 수많은 고통과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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