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진압에 나선 한국 경찰

꽃샘추위 쌀쌀한 바람이 서울 도심거리를 휘감은 10일 저녁.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시위대와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패기 시작했다. 시민 인권을 보호한다는 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찍어 누르며 집단 구타를 시작한 것이다.

한·미 FTA 8차 협상에 항의하며 ‘FTA반대’집회를 진행하던 2천여명의 시위대가 광화문에서 종각방향으로 강제해산당하고 있었다. 밀리는 시위대가 경찰의 무장력에 휩쓸리는 현장 최일선에 기자들이 있었다. 기자는 항상 현장에 정위치 한다. 기자는 시야만 확보되는 안온한 전망대를 선택하지 않는다. 기자는 거친 숨결이 요동치는 현장에 늘 서 있는다. 찰나의 팩트를 주시하며 기록한다. 신성한 취재 행위가 가동될 즈음 바로 기자들이 무차별 구타당한 것이다. 연합뉴스 MBC SBS 조선일보 한겨레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등 7개 언론사 취재 사진기자 8명이 폭행당했다.

집단폭행은 경찰 무장력을 과시하는 아수라의 한판이었다. 내리치는 묵중한 방패에 콧잔등이 찍혀 5바늘을 꿰맸다. 얻어맞은 머리는 부풀어 올랐다. 치켜든 방패는 기자의 턱을 가격했다. “기자를 왜 폭행 하느냐”는 다급한 항의는 무시당하고 취재진에 대한 폭행은 계속됐다. 책임자급의 현장 지휘관은 무관심했다. 대부분 기자들이 경찰의 발에 채이고 몸과 얼굴을 얻어맞았다. 한 사진기자는 ‘PRESS’라고 쓰인 기자용 헬멧을 쓰고 있었음에도 폭행을 당했다. 기자임을 뻔히 알고서도 경찰이 고의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구심이 생긴다. 취재도구인 카메라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왜 기자들에 대한 경찰폭행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나. 해마다 경찰의 기자 폭행은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폭행사건 때마다 기자사회는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경찰은 의례적인 유감표명과 재발방지를 되풀이하며 읊조린다. 대부분 구두선으로 끝나고 만다. “자체 진상조사중이다. 여러 부대가 있다보니 당장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반인 시위대와 기자들을 잘 구분하기 힘들다. 격렬한 시위를 단속하다 생긴 의도치 않았던 사고일 뿐이다.” “향후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압부대원에게 안전수칙과 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 판에 박힌 경찰 관계자의 반복되는 다짐에 누가 신뢰를 보낼 수 있나. 이번 집단적 기자폭행 사태는 이를 잘 웅변하고 있다.

지금 서울에선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국제기자연맹 특별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대표기자들 1백30여명이 한국 기자사회를 목도하고 있다. 이 와중에 8명의 현장 기자 집단구타사건의 파장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서울지방 경찰청의 유감표명에 이은 이택순 경찰청장의 사과는 미진하다. 유감스럽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도적 폭행근절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시위진압 명분을 내세운 기자진압을 다시는 행하지 않겠다는 구체적 방책이 빠져있다.

단순히 진상조사 후 폭행가담자만 처벌해선 미봉책에 불과하다. 경찰은 차제에 시위 통제시 대언론 근무지침을 제정해야한다. 다행히 경찰청이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세미나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 대책을 세운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말에 책임을 지고 국민과 기자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제도적 대언론 매뉴얼을 천명해야 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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