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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용석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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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 유행하는 코미디 중에 ‘같기도’라는 코너가 있다. ‘같기도’란 특정 행동이 해석하기에 따라 이렇게도 보일 수 있고 저렇게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응용한 일종의 상황극이다.
‘같기도’는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그때그때 마다 다른 임기응변식 상황논리’를 교묘하게 비판한다. ‘같기도’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선후보로 거명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행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손학규 전 지사는 산사와 정치행사장을 오가며 경선참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않는 것 같기도 하다가, 결국 탈당을 선언했다. 분당한 열린 우리당과 분당파들의 행동은 헤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같기도’ 행동은 다중적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제스처를 보여줘서 사회여론을 떠 보려는 일종의 여론확인작업이기도 하다. 여론의 유불리 또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상황에 맞춘 논리에 따라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우리 정치권에서 쉽게 발견되는 ‘같기도’ 문화는 책임과 이념이 없는 정치를 보여준다.
사실 ‘같기도’가 정치인들만의 특허는 아니다. 한국 언론의 보도도 ‘같기도’ 같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의 구분도 ‘같기도’ 같은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사회에 여당지와 야당지는 있어도 보수나 진보지는 없다는 비판이 있다. 개별 신문사들은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 없이 그때그때 다른 상황논리를 펴기 때문이다.
이른 바 ‘의견 일관성’의 부재는 곳곳에서 보인다. 개별 정책별로 ‘같기도’보도는 반복해서 나타난다. 특정 정책을 적극 찬성하고 국가의 장래가 걸렸다고 주장하던 언론들이 정권의 주체가 바뀌면 독특한 상황논리를 동원해서 같은 정책에 대해 비판한다. 정책이나 법 적용대상이 바뀌었다고 더 상위의 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헌법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우리 언론은 사안마다 다른 입장을 취한다. 자사의 이해관계가 상황논리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신문법 통과 당시 조중동 등 메이저 신문들은 신문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포털 등 인터넷매체의 여론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규제하고 심지어는 편집행위를 규제하는 법규를 비판없이 소개하고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마이너신문들도 마찬가지이다. 표현의 자유나 편집국 독립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인터넷실명제와 같이 기본권 침해 우려가 높은 법안이 통과될 때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인터넷 여론질서를 강조하면서, 전통적 매체 관점에서 여론질서가 잡히길 기대한 것이다.
신문에 있어 ‘의견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개별 사안 하나하나를 그럴듯하게 정치상황에 맞추어 조립해서 설명한다면, 신문은 사회의 리더가 되기 어렵다. 한국 신문들이 갖는 비이념적 특성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주주의이며, 무엇인 인권인지, 그리고 무엇이 바람직한 사회발전인지에 대해 내부적인 합의가 없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구성원들이 자사 신문의 편집방향이 지향하는 공동 목표를 공유하고 있지 못한 경우도 많은 것 같아 아쉽다. 또한 저널리즘이 갖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독립성’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문의 ‘의견 일관성’이 달성되지 않는 것 같다.
‘같기도’는 변명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이것은 정보를 순도를 떨어뜨려 전반적으로 사회에 불확실성을 높이는 일종의 노이즈이다. 사회의 노이즈를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언론의 책임성을 구현하는 한 방법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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