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
|
|
지금 한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금년 말 누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인가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대한 찬반이 대선에서 어느 쪽에 유리 혹은 불리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 중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의 가부에 대한 시비가 특히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정상회담문제에 대해 비교적 미온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그런데 최근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작년 10월 베이징에서 북측인사를 접촉했으며 그 후속조치로 이해찬 전 총리가 지난달 방북하여 북한 고위층과 남북관계를 협의하는 가운데 정상회담 문제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커다란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7년 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주역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간도 그랬지만 지금도 제2차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투명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구걸해서는 안된다, 대선카드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어설픈 욕심이라는 등 대체로 부정적인 목소리가 더 높은 것 같다.
그런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13합의 이후 북미관계 발전의 전망이 밝아지면서 작금에 와서는 남북미중의 4자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사태의 진전여하에 따라서는 4자정상회담은 한국의 대선 훨씬 전에라도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핵문제협상이 겪어온 복잡하고 지루했던 경위를 생각할 때, 4자정상회담의 조기개최 가능성은 아직은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한 국민적 바람이 미온적인데 국제사회에서는 벌써 4자정상회담의 가능성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해묵은 감정 때문에 민족내부문제 해결에 주춤하면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우리는 주변강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1905년 10월 고종황제는 태프트-가쯔라 밀약(그해 7월 체결)도 모르고 일본을 눌러달라는 밀사를 미국에 보냈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미소간의 흥정으로 소련이 대일참전약속의 대가로 한반도 분할점령권을 인정받은 사실은 물론, 이에 따라 그해 8월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단이 미소 간에 합의되는 것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필자가 수년간 ‘6·25’를 연구,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해방 후 ‘한반도의 내전발발’을 예견한 미국이 이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이미 1949년 7월 그 대비책(먼저 북한이 남침케 한 후 유엔결의를 거쳐 북을 격파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확고부동한 지위를 확립한다는)을 마련해 놓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남한은 북진통일을 외쳤으며 북한은 남침공격을 감행했다. 그 후 동북아패권 유지를 위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의로 조장하는 미국의 정책에 남한은 맹목적으로 추종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반세기동안 냉전체제의 지배를 받아온 한반도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얄궂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후사정은 여하 간에 북한이 마침내 핵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일어난 변화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정세를 관리하기 위한 관련제국들의 구상과 복안을 집약한 것이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요 2·13합의이다.
이런 판국에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4자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남북은 민족의 장래를 위한 공동자세도 정립하지 못한 채 또다시 주변강국들이 저들의 편이대로 짜놓은 새 질서를 수락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보다 적극적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어쩔 수없는 일이다. 그것이 두렵다고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것은 당리를 위해 국익을 희생시키자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가는 말하자면 누가 아랫목을 차지하느냐의 문제이다. 이에 비해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이 공동으로 한반도의 장래를 위한 입장을 모색하고 정립하는 것은 외풍을 막기 위해 벽과 창문을 손질하는 일이다. 외풍을 막을 생각은 않고 아랫목만 차지하겠다는 것은 결코 옳은 자세라 할 수 없다.
남북대결과 군사정체상태 그리고 불평등한 한미동맹으로 특징지어진 한반도의 냉전질서가 남북화해협력과 공동번영 그리고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로운 질서로 대체되는 새 시대의 먼동이 트고 있다.
이제 언론은 우리 민족이 더 이상 내부의 정쟁에만 몰입하여 외세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외부정세를 거시적으로 볼 줄 알뿐 아니라 그 형성과정에도 자주적이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족이 되도록 이끌어가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