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성·합리성 없는 '3불 폐지'

[현장기자가 본 3불 정책]유희준 SBS 기자


   
 
  ▲ 유희준 SBS 기자  
 
요즘 ‘3불 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쪽의 주장을 살펴보면, 논리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특히 일부 언론은 사실과 다른 보도로 혼란을 가중 시키고 있는데, ‘3불 정책’의 변화가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 들어 ‘3불 정책’에 대한 첫 논란은 OECD 보고서에서 비롯됐다. 일부 언론에서 OECD가 ‘3불 정책’ 폐지를 권고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OECD는 ‘3불 정책’ 폐지를 권고한 적이 없다. “대학의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 서둘러 ‘3불 정책’ 등 기타 규제들을 없애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을 뿐이다. 올해 ‘3불 정책’에 대한 논란의 첫 단추가 잘못 꿰여진 것이다.

이후 서울대를 시작으로 일부 사립대 총장들까지 나서 ‘3불 정책’ 반대와 폐지를 주장했다는 보도가 잇달아 나왔다. 특히 서울대 이장무 총장도 ‘3불 정책’에 반대한다는 내용까지 보도됐다. 대통령이 ‘3불 정책’에 대해 발언한 직후여서, 이 총장의 발언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총장은 ‘3불 정책’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총장은 최근 ‘3불 정책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에 반대하며, 언론이 너무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일부 언론은 교육개발원의 연구보고서를 인용해 국책연구소가 “3불 정책과 2008 대입제도를 정면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3불 정책’을 기반으로 한 입시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교육개발원이 내놓은 연구보고서의 핵심은 정반대였다. 대학입시는 내신을 중심으로 하고 대학별 고사는 최소화해야 하며, 대학은 고교와 유기적 관계를 맺어 잠재 능력이 탁월한 고교생을 선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게 연구보고서의 핵심이다.

최근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하는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언론사들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3불 정책’의 핵심인 본고사 금지에 찬성했다. 10년 전에는 본고사를 부활하면 학교가 입시 학원화되고, 과외 망국병이 도진다며 본고사 부활에 반대한 언론사들이 이제는 본고사를 금지하는 ‘3불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입장 선회에 대한 별다른 설명도 없이 오히려 왜곡보도와 오보로 ‘3불 정책’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 따라서 ‘3불 정책’도 불변의 명제는 아니다. 그러나 정책이 바뀌려면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한 사회적 공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부총리의 말처럼 공교육을 중시하는 2008학년도 입시안의 방향과 ‘3불 정책’도 1995년 5·31 교육 개혁안을 마련할 때 토론을 거쳐 잡은 것이다. 수많은 수험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육정책은 그래서 충분히 시간을 갖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학위논문 1백40만권 가운데 ‘3불 정책’과 관련된 것은 7건이다. 그나마 5건은 본고사에 대한 대학별 비교 분석에 그치고 있다. 또 단행본 4백60만권 가운데 ‘3불 정책’의 문제점을 언급한 책은 1권에 불과하다. 국책연구소인 교육개발원에서조차도 ‘3불 정책’과 관련한 연구보고서를 단 1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학문적, 정책적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3불 정책’에 대한 폐지 주장이 난무하는 걸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논리적, 합리적 근거 없이 대학의 자율성만을 요구하는 학자들도 그렇고, 또 그런 주장을 전달하기만 하는 언론도 과연 현행 교육 정책을 탓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유희준 SBS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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