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시기


   
 
  ▲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결정적 시기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성장 환경에 따라 뇌의 발달은 영향을 받는다. 뇌 세포들이 서로 연결을 짓고 자라는 과정 중에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것이 있다. 결정적 시기는 후천적 지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로 뇌 과학을 풀어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독일의 연구자 로렌츠는 오리실험을 통해, 새끼 오리들이 항상 어미 오리를 쫓아다니는 행위가 특정 시기에 결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리의 뇌는 부화하자마자 처음 본 흰색 물체를 쫓아가도록 유전자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진짜 엄마오리가 나타나도 새끼 오리는 따라가지 않는다.

결정적 시기와 관련한 또 다른 중요한 연구는 휴블과 비셀의 고양이 실험이다. 새끼 고양이의 왼쪽 눈을 가리고 외눈 생활을 하게 했더니 얼마 후 왼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생리학적으로 정상적인 눈이었지만, 자극을 받지 않은 고양이의 왼쪽 눈은 뇌세포와 연결되지 못해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고양이의 결정적 시기는 10주이다. 인간의 언어능력에도 결정적 시기는 있다. 대략 12세 전후해서 아이들 언어구조는 결정된다. 이 시기를 지나서 외국어 공부를 하게 되면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결정적 시기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특정 유기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된다.

언론사에도 결정적 시기는 있다. 바로 수습기자에서부터 시작해서 3년 정도의 신참 기자시절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 3년을 어디서 보냈느냐에 따라 신문출신 또는 방송출신으로 분류된다. 그 꼬리표는 끝까지 그 기자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 만큼 저널리즘 모델을 학습하는 초기 입사년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신문구독률의 급격한 하락과 프라임타임 저녁 뉴스의 시청률 하락은 대중매체로 군림하던 신문과 방송에 큰 환경변화를 몰아 오고 있다. 그 변화의 원인이자 해결점은 말할 것 없이 디지털이다. 더 유연한 뉴스생산 조직구조와 다기능적인 언론인 모델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일부 신문사들이 보여준 웹 사이트 개편내용은 신문이 본격적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뛰어 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멀티채널의 국제 라이브방송을 전송하는 인터넷TV를 강화하거나, 취재기자들이 수집한 동영상을 기사에 붙이는 기술을 적용하는 등 일련의 행보는 더 이상 인쇄신문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혁신은 결국 사람이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문사나 방송사의 고민은 기존 제작 관행에 익숙한 세대들이 보여주는 문화지체 현상에 있다. 10년 이상 수행해온 취재나 제작관행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대안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인력교육에 있다. CNN도 위성송출시스템과 16mm카메라의 보급에 맞춰 1인 취재시스템을 확산시키고자 했지만, 오래된 제작관행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기 어려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규인력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무장시키고 여기에 맞는 교육을 시켜서 신구 저널리스트들간의 기능적 조화를 도모했다. 이른바 결정적 시기를 거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새로운 인력의 결정적 시기에 새로운 능력과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이다.

최근 한 신문사가 새로 뽑은 수습기자를 디지털1기로 명명하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수습교육과 과제를 부여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것의 성공여부는 좀 더 시간이 걸려야 알겠지만, 분명한 점은 신입 기자들의 결정적 시기에 새로운 기회를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지금 언론사에 입사하는 인력들은 디지털 세대이며 네트워크 세대이다. 10년 후 그들은 전혀 다른 디지털 시장에서 뉴스를 생산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인 이들이 갖는 창발성과 환경에 적응하는 탄력성, 그리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래된 관행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세대를 어떻게 채용하고 어떻게 교육시키는가가 향후 5년 내지 10년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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