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 사건과 한국의 왜곡된 쇼비니즘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대학생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은 이를 두고 만평을 그렸다. 부시대통령의 말풍선엔 ‘한방에 33명...이로써 우리 총기기술의 우수성이 다시한번...’이라는 대사가 삽입되었다. 하지만 마감 후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자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서울신문은 만평을 내려야 했으며 백무현 화백은 사과의 말을 전해야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 만평에 비난을 쏟아부었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는 백무현 이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결국 백화백과 서울신문은 ‘연재 중단’ 결정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왜 이 만평은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이번 사안에 대해 몰입하는 이유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것 딱 하나 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팩트는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가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총을 쏴 서른 두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자살한’ 것이다. 한국은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들어 정부차원에서 조문사절단을 파견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이 거절한 것을 보면 미국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범인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네티즌은 이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호들갑스럽게 ‘나라망신’을 들먹이며, ‘경제대국’답게 먼저 사과하고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민족감정’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 CNN 방송엔 한국 언론이 그토록 우려하는 ‘한국과의 외교 재검토’니, ‘한국 비자면제 재검토’니, ‘한미FTA재검토’니 하는 말들은 커녕,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 이외에 한국과 관련된 어떤 것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는 ‘히스패닉’이나 ‘미국계 중국인’이나 다른 미국계 소수민족들 중 한명일 뿐이다.
특히 백무현 화백의 만평에 대한 비난의 수위는 지나치다. 네티즌들의 백무현 화백에 대해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는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너무 꼬았다. 만평은 처음 ‘총기 난사 사건의 근본원인’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라이플협회(NRA)'의 로비와 정부의 의도적 방관을 비판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NRA보단 그 로비를 받아주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한 후, 대상을 좁혔을 것이다. 미국 행정부의 수장은 부시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가 만평에 등장했고, 대사가 삽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사 삽입 과정에서 지나친 비약이 있었다. 거기까지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해, 결국 만평이 갖는 풍자마저 몹쓸 것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그 만평이 이미 번역되어 외국에 돌고 있다며 ‘한국인 망신시킨다’는 주장이다. 만평가에게는 ‘만평’으로만 말해야 한다. 그의 만화가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면 그를 비판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을 ‘매국노’, ‘한국인 망신’으로 표현하며 비판의 범주를 민족과 국가적 차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이는 왜곡된 쇼비니즘이다. 다른 이의 잘못까지 ‘민족과 애국’의 이름으로 미안해하며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배타적 애국주의와 사촌관계쯤 된다.
문제가 된 만평 정도의 풍자는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네티즌들의 말대로 “사람이 죽었는데 만평을 이렇게 그리나?” 하고 의문을 가질만한 것은 많다. 그런 만평은 전세계 어디에나 돌려지고 있다. 하지만 범인이 단지 ‘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우리만 호들갑스럽게 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엄숙하게 애도만 표명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사과할 일도, 통탄할 일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개 만평작가가 한국인을 망신시켰다고, 한미관계에 균열을 초래했다고 비난할 일도 없는 것이다. 딱 그만큼만 보자.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