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
|
|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를 접했을 때, 실로 엄청난 인명피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이제는 미국 사회도 총기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룰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국언론에 비친 이번 사건은 가해자의 국적이 어디냐에 처음부터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국가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주미 대사와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나, ‘한국인으로서 미안하다’는 여론이 조성된 것이나,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언론이 가해자 조승희씨에 대해 초점을 맞춰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에선 이 사건이 마치 국가적 잘못이거나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일처럼 다루어졌다.
왜 우리가 조승희씨 개인의 삶과 주변인물들의 신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알아야 하며, 그의 살인행각에 대해 미안해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언론은 한국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전혀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도 방송과 언론을 통해 눈이 따갑도록 조승희씨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있다. 저녁뉴스의 앵커는 ‘한 개인의 행동이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으니 각자 조심하자’는 취지의 웃지 못할 발언을 방송에 실려 보낸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있으니, 자신의 행동이 국가에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애국심’이라고 포장해왔지만, 애국심의 다른 이름은 국가주의다. 국가주의는 개인의 자율성을 국가의 이름으로 제압해버린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억압적이다. 때문에 국가주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 시절과 비교했을 때 과연 얼마나 변화했으며 개개인의 의식이 성숙해졌는가를 묻게 된다.
국가주의는 또한 필연적으로, 타 국가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참사 사건에 대해 한국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국가주의적 보도 태도는, 역으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유학생이나 이주노동자가 조승희씨와 같은 극악한 살인행각을 벌였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개인의 행동으로 일어난 사건을 보도하면서 개인이 속했던 특정 국가 전체에 대한 매도와 더불어, 해당 국가에서 온 다른 유학생들과 이주민들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조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정말 우려되는 한국 사회와 한국 언론의 국가주의의 모습이다.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