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騎士)와 기자(記者) 사이



   
 
  ▲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얼마 전부터 게으르게 읽고 있는 ‘중세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중세 시대 기사(騎士)는 기자(記者)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기사는 칼을 들었고, 기자는 펜을 들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둘 다 사회적 공명심과 공적 책임과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중세 기사들은 왕과 영주와의 계약관계를 충성을 맺는 대신 여러 가지 특권을 부여 받은 존재였다. 기사는 용맹하고 거친 ‘전사(戰士)’에서 그 기원이 시작되지만, 중세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그들은 교양을 배우고 기독교적 공명심으로 무장한 새로운 상위 계층으로 자리 잡는다. 기사들은 영주로부터 일정한 토지를 부여받아서 개인적 경제적 특권활동을 영위하지만, 이는 영주나 신학적 진리를 위한 전쟁에 나서기 위한 물질적 기반에 불과했다. 신학이 지배하던 중세시대에 기사들은 오늘날 기사도라는 높은 윤리를 요구받았다. 이것은 기독교 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용기, 경신, 인협, 예의, 명예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사들은 신학적 진리를 위해 언제든지 전장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사들은 높은 윤리와 더불어 일정 정도 자기 행동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도 갖고 있었다. 편차는 있었지만, 중세 후기로 갈수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전문지식을 갖추기도 했다. 중세 기사들이 오늘날 전문직 모델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그러나 겉으로 기사들은 공명심이 충만해 보였지만, 그들도 경제생활의 한 주체로서 자기 땅에서 수확되는 농사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중세 이야기’라는 책 속에는 일부 중세기사들이 공명심을 뒤로하고 자신의 농사거리만 걱정하는 것을 한탄하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를 읽으면서 얼마 전 한 원로 언론인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과거 지사형 기자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나라 걱정과 공공문제에 대한 관심거리로 주로 대화를 채웠지만 언제부터인가 기자들이 모이면, 아파트 투자와 재테크 이야기, 이직과 관련한 고민 등으로 주된 대화소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대화가 공적 담론에서 사적이해관계의 담론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직업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우울한 진단과 맞닿아 있다. 기자는 직업 형태상으로 전형적인 전문직은 아니지만 전문직을 지향하고 이를 모델로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기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흔히 전문직이라고 하는 의사, 교수, 법조인들까지 대화의 주된 소재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당면한 높은 경쟁수준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회책임감과 자율적 판단을 중요시하고 있는 전문직 가치와 규범을 몰아내고 일상의 개인적 이해에 몰두하게 만들고 있다.

기자는 다른 전문직 보다 더 심각한 변화를 겪는 것 같다. 미디어 시장의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대다수 기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으며, 자기 개발을 못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을 맛보고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하락하면서 자부심에 상처를 받고 있다.

기사도 기자도 경제적 토대는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을 유지시켜 주는 집단 가치와 공동의 담론문화도 중요하다. 경제적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면, 기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탁자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기자들에게 자기 개발 기회를 부여하는 것, 창조적 발상을 존중하는 것, 독립성을 보존함으로써 자율성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조직이 지향하는 규범을 공유하는 문화 등이 이러한 메커니즘의 구성품이다.

공적 담론문화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사회 전문직들이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고려할 때 더 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필자와 같은 교수사회를 포함해서.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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