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의 참뜻 - 산업화인가 반통일인가?


   
 
  ▲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최근 한국의 학계와 언론에서는 4·19와 5·18은 민주화를 이루었고 5·16은 산업화를 가져왔다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4·19나 5·18이 민주화를 촉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5·16의 덕으로 산업화가 됐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우선 5·16 군사반란 주역들의 소위 ‘혁명공약’자체가 민생고를 해결하고 자주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정도의 목표를 세웠지 외자도입으로 산업화를 이룬다는 거창한 꿈은 꾸지도 않았다.

그들이 뒤집어엎은 민주당 정권은 4·19 여파의 혼란이 수습되는 대로 실시하려고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있었다. 5·16세력의 처음 경제개발계획은 실은 민주당정권의 초안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5·18 27주년 기념식에서 ‘군사정권의 업적은 부당하게 남의 기회를 박탈하여 이룬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정통성의 하자를 가리기 위해 시급히 가시적 경제성과를 올려야 했다. 그래서 한일회담도 돈 몇 푼에 졸속으로 타결했다. 그리고 그들이 일소하겠다던 부패와 구악의 표상인 대기업주들에게 면책을 대가로 협력을 요구했으며 대기업은 이를 쌍수로 환영했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은 정부보증으로 마구잡이로 외자를 들여오고 정권은 대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헌상 받는 정경유착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주들은 박 장군을 경제성장을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로 치켜 올리면서 그 반대급부로 박의 비호 하에 스스로의 재벌왕국을 건설해 나갔던 것이다.

또 군대식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경제발전에는 관료주의, 획일주의, 금전만능풍조, 재벌의 횡포, 총체적 부정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만성적 빈부격차 등 심한 부작용과 더불어 뒤탈이 따랐다. 후에 김대중정부가 뒤처리를 떠맡은 IMF 위기는 군사정권시절의 무절제한 외채도입이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 노무현정부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은 IMF 구제를 받은 여러 나라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종의 IMF 후유증이다. 따라서 그 책임은 소위 산업화세력에게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한국경제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박 장군의 군사독재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얼마 전 미국에 와서 ‘나에게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자랑했는데 신도 아닌 사람이 무슨 재간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단 말인가?

한국의 경제성장은 어느 한 집권세력의 독자적 힘이 아니라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과 인내성과 근면성 그리고 기업의 창의성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특히 박정희가 가장 미워하던 젊은 학도들이 외국에 나가서 국제경제와 후진국경제개발의 최신 이론과 정책을 연구하고 돌아와 관계와 경제계에서 기여한 공로도 정당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지금 5·16세력은 그들이 아니었으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변하는데 그것은 마치 몰지각한 일본인들이 그들의 식민통치가 아니었으면 한국의 근대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맹랑한 주장이다. 5·16이 없었더라도 민주당정권이나 그 후계정권하에서 경제가 능히 성장됐을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박 장군이 졸지에 갔어도 한국경제는 계속 성장해 나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세상에는 군사쿠데타나 독재정권을 경험하지 않고도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도 많다.

한국 현대사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자면 휴전 후의 자유당정부가 반통일 세력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만의 독재도 반통일을 위해 강행됐던 것이다. 그것을 타도한 4·19는 민주화과정인 동시에 반통일세력을 축출한 통일세력의 승리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 이승만 정권을 물리친 학생과 젊은이들은 민주화와 아울러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위치면서 통일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5·16은 군부란 반북반통일 세력이 통일을 절규하는 4·19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공약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고 다짐한 것으로도 입증된다. 또 비록 ‘국토통일’을 위한다는 토는 달았지만 공산주의와 대결할 실력을 배양하겠다고 한 것도 결국 평화통일을 배격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실제로 5·16후 32년에 걸친 군사독재체제의 핵심과제는 ‘반통일’의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5·16 잔재세력인 한나라당이 남북의 화해협력을 극력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4·19, 5·18 그리고 6월항쟁을 거쳐서 집권한 통일지향적인 민주화세력은 지난 10년 동안 반세기 이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꾸준히 개선시킴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통일의 전망을 훨씬 밝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실적을 한국의 국민과, 그리고 여론을 이끄는 언론은, 과연 반통일적인 군사독재가 산업화에 실제 기여한 업적보다 값없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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