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지원 선진화’.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면서 아득한 말이다. 기자의 취재를 도와주고 취재과정을 선진화시켜주겠다니 고마우면서 황당하다. 권력의 독선은 항상 위험하다. 권력 자신이 가장 옳고 타자는 틀리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언로를 축소하려는 권력의 전지전능이 가능할까. 독선은 독단을 낳고 배타적 어리석음으로 향할 뿐이다. 기자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묶어두려는 기도가 성공할까.
29일 노대통령은 기자실 통폐합에서 한발 더 나가 “한꺼번에 바뀌면 기자들이 너무 불편할까봐 브리핑실 외에 기사 송고실을 제공하려는 것인데 언론이 계속 터무니없는 특권까지 주장한다면 원리원칙대로 할 용의가 있다”며 기자송고실 전면 폐지까지 언급했다. 가히 철권정치시대에서나 나올법한 말이다. 노 대통령은 늘 이슈메이커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는 발언을 해온 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언론사의 생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자신의 발언이 다음날 대문짝만하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취재 현장을 차단하고 이에 대한 반발을 기자들의 직업이기주의로 몰려는 헛발질을 계속 하고 있다. 기자들은 자료보다 직접 인터뷰를 원한다. 기자는 국민의 눈높이로 현장에 서있기를 원한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기자들끼리 담합한다는 ‘담합론’은 자신의 진정성을 언론이 늘 왜곡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의 소산이다. 기자를 적대시하는 발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취재 현장 적재적소에 있었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통폐합하여 기자들을 합동브리핑센터로 몰아대는 ‘선진화’는 대입학원 강의실처럼 일방적 받아쓰기만 강요할 것이다. 취재는 질문의 연속성이다. 정보공급자와의 살갑고 팽팽한 문답을 통해 정책 상황의 실체를 스케치하고 전망을 이끌어낸다. 그 정보책임자와 대면커뮤니케이션을 극단적으로 차단하고 전자브리핑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기자의 시각과 후각과 청각을 거세하겠다는 무지몽매함 그 자체다.
저녁 6시에 퇴근했던 구청공무원들이 밤 10시 이후 수백 명씩 다시 현관에 등장한다. 퇴근기록을 심야로 늘려 시간외 수당을 타먹는 수법이다. 이미 만성화되어 끼리끼리 챙겨준다. 휴일에 등산복차림으로 나와 도장 한번 찍고 휴일수당을 타먹는다. 평균 연봉 1억8천만원 공기업 감사 21명이 남미로 업무혁신 세미나를 떠났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되돌아왔다. 이과수폭포를 관광하면서 직원들을 직무감찰하고 회계 감사할 세미나를 열 참이었나보다. 이렇게 국민의 혈세는 이과수 폭포처럼 콸콸 세고 있다. 이런 요지경도 언론 취재가 밝혀낸 이면이다.
지난 4년간 공무원은 4만8천여명이 늘었다. 관료사회는 쑥쑥 커졌다. 한해 정부예산만 2백38조다. 민간조직은 경쟁력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 수익성이 없으면 공중 분해되 고 일자리도 사라진다. 공직도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공복(公僕)이 우선이지 그들의 나태한 일자리 보장이 우선이 아니다. 어설픔과 미숙함과 무책임의 속내를 국민이 모를까. 국민은 언론에게 알권리를 맡기고 취재를 부탁했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해 공직사회를 파헤친다.
오늘도 1만 여명의 기자들은 피 말리는 현장을 뛰고 있다. 기자에 대한 정권 차원의 모멸감을 묵묵히 참고 있다. 언론은 스스로 자란다. 언론의 성숙과 선진화는 언론인들의 몫이다. 권력이 나서서 왈가왈부할 몫이 아니다. 밀어붙이려는 정권에 묻는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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