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민심’이 나왔다. 한국기자협회가 전국 언론사 기자 3백1명을 대상으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된 뒤 한쪽 당사자인 기자들의 생각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기자 민심’은 예상보다 훨씬 냉담했다.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10명 중 9명이 반대했다. 스트레이트 부서일수록, 젊은 기자일수록 반발을 더욱 거셌다. 일선 현장에서 부대끼는 빈도가 많을수록 반대의 목소리도 컸다는 얘기다. 취재환경이 더 나빠질 것이며,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전자브리핑제 또한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의견이 90% 가까웠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 정부에 대한 기자들의 신뢰가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10명 중 8명이 현 정부의 언론정책이 잘못됐다고 비난했다. 10명 중 7명은 정부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정부의 언론에 대한 불신’ 탓이라고 했다. ‘대선 등 향후 일정을 고려한 정치적 고려’라는 시각도 10명 중 2명이 넘는다. 이런 불신은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언론과 담을 쌓고 언론을 적대시한 결과다. 그렇다고 이 정권 들어 ‘언론 개혁’이 설득력있게 진행된 것도 아니다.
기자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지 않다는 것은 두가지 설문 결과에서 발견할 수 있다. 76.7%가 ‘공무에 지장이 없는 한 자유로운 접촉을 허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말은 공무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대면 접촉을 하진 않겠다는 뜻이다. 더욱이 개별적으로 사전 약속이 된 경우에만 공무원을 접촉하겠다는 의견도 21.6%나 됐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정홍보처 폐지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폐지’보다 ‘기능 조정’에 무게를 두며 한나라당 주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결국 강행할 태세다. 국회에 사후 보고만 하면 되는 예비비 55억원으로 곧바로 합동브리핑센터와 전자브리핑시스템 구축 공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정부는 언론계와의 공개토론회를 약속했다. 하지만 토론회가 열리기도 전에,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정부 방침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고 있다.
정부 부처의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뤄지고, 대언론 브리핑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만큼 만족할 수준에 이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설문에서도 무려 90%가 넘는 대다수가 정부 부처의 정보공개 정도에 불만을 나타냈다. 또 현재 실시하고 있는 정부의 ‘브리핑 질’에 대해서도 무려 88%가 고개를 저었다.
노무현 정부의 그릇된 언론관은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않아 담합이나 한다”는 발언에서 압축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의 한국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있을만큼 한가한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담함’이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기자실 옆자리에 앉은 기자는 ‘회사 동료’가 아니라 ‘다른 회사 경쟁 상대’다. 기사를 쓸 때도 누가 볼새라 글자 급수를 줄이고, 바탕화면을 어둡게 할 정도다.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기자가 대체 몇이나 되고, 또 설사 있더라도 이런 치열함 속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는 정권 출범 초기부터 모든 언론을 ‘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권 말기에 느닷없이 기자실 통·폐합 문제를 꺼내들었다. 올바른 개혁은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다. 언론의 매커니즘도 모른채, 기자들의 정서도 파악하지 못한 채 강행하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기자들의 민심부터 제대로 읽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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