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않는 뉴스룸의 공통점

최진순 기자의 '온&오프' <22>

신문, TV의 뉴스룸이 혁신돼야 한다는 21세기 미디어 세계의 주술은 이미 하나의 명제로 작동하고 있다. 세계의 유력매체들은 이미 뉴스룸을 재정의해왔다. 뉴욕타임스의 통합뉴스룸은 드디어 완성국면에 와 있다. 데일리 텔리그래프는 머나먼 여정 끝에 새로운 뉴스룸이 구축된 빅토리아의 뉴미디어센터로 입주를 끝마친지 오래다.

국내의 경우도 비록 일부 매체에서 완전하지 않지만 뉴스룸의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중앙일보는 JES로 JMnet의 새로운 뉴스보급로를 열더니 온라인, 오프라인을 구별하지 않는 뉴스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디지털뉴스룸은 국내 최대의 지위를 갖고 있다. 일간스포츠, 중앙m&b, 중앙방송 등 계열매체와 뉴스 조직의 콘텐츠는 조인스닷컴으로 집중화하면서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2003년 CBS(기독교방송)의 한 기자에 의해 시작된 인터넷 브랜드 뉴스 노컷뉴스는 가장 유력하고 역동적인 뉴스룸의 얼굴로서 CBS 내 대표적 뉴스룸으로 존재한다. CBS 노컷뉴스는 기존 라디오 보도국 소속 기자와 인터넷 기자로 구성된 뉴스룸으로 운영되면서 새로운 뉴스 소비자들과 24시간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뉴스룸의 변화는 국소적이고 형식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매체는 혁신을 두려운 과제로 보고 있다. 기자들 역시 뉴스룸과 업무의 재설계보다는 “신문산업은 결코 패망하지 않을 것”이란 20세기 주술에 묻혀 있다. 지면 또는 TV와 웹의 통합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펜 기자들은 ‘디지털’과 ‘컨버전스’를 소재로 한 기사는 작성하고 있다.

이러한 기자들로 구성된 뉴스룸 즉, 혁신 않는 뉴스룸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 단절된 소통

뉴스룸을 구성하는 평균 200명 이상의 기자들과 닷컴 또는 언론사 내부에 소속한 온라인 뉴스조직 구성원 수십여명 사이에 생산적 소통이 없다. 같은 브랜드를 내건 콘텐츠 생산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만 정기적 왕래가 없다.

한 온라인 비즈니스 담당자는 ‘사고’를 내기 위해서 뉴스룸 내부의 이곳저곳에 읍소를 해야 한다. 그것도 보통 2주일 전에 협조를 구하지 않으면 지면 소개가 어려울 수 있다. 일초 일분을 다투는 온라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오프라인 뉴스룸의 배짱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소통이 없으니 이해가 없고, 이해가 없으니 아집만 남은 것이다. 온-오프 종사자들간 대화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같은 뉴스룸 내부에서조차 미래지향적 대화를 찾아볼 길이 없다. 한 언론사 사내 게시판엔 “화장실을 보수해달라”는 글만 넘친다. 뉴스룸에 대한 혁신 담론의 광장이 없는 것이다.

미디어 격변을 맞는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이 불가사의한 언론사 뉴스룸의 문화는 다시 말해 스스로 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한 입체적인 검증이나 개선 노력이 없음을 반증한다. 콘텐츠의 유통, 소비자와의 접점을 찾는 노력 조차 즉흥적이고, 일과적으로 흐르기 일쑤다. 소통의 부재는 혁신의 실종에 다름아니다. 더구나 독자, 시장과 소통하는 전담자도, 업무의 정확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 저조한 인터넷 참여도

얼마나 많은 뉴스룸 구성원들이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는가는 혁신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웹 사이트에 뉴스룸과 기자들이 합류하고 있는 규모와 그 특징은 뉴스룸이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NHN 홍은택 미디어담당 이사는 최근 한 파워 블로거와의 대화에서 “오늘 일어난 일을 내일 알려주려고 신문은 일한다”면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오늘 할 이야기는 온라인으로 생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이사는 “'뉴스'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면서 “전문가와 독자들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도 충분히 확보돼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급변하는 시장과 독자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기가수 방실이 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날 필자의 어머니는 “방실이 씨 소식이 궁금하니 인터넷에서 찾아봐달라”고 말씀하셨다. 신문은 내일 나온다. 제한된 편성시간에 나오는 TV뉴스는 개별 시청자의 기호를 무시한 일방제공에 머무르고 있다. 노년층도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의 장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소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되던 때에서 영상물이 무선으로 자유자재로 유통되는 시대가 됐다. 이 시대는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정보를 찾으려는 독자의 요구가 가장 중요한 혁신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신문과 TV는 새로운 소비자를 대응하기에는 너무도 낡았다. 뉴스룸 종사자들의 온라인 참여도는 대폭 상향돼야 한다. 일정한 방문자 수와 유가부수를 확보한 뉴스룸이라면 전체 구성원 중에서 절반까지 온라인 뉴스 생산 및 서비스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 천편일률적인 뉴스

뉴스룸의 혁신을 강화할수록 콘텐츠 즉 뉴스의 형식과 내용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뉴스는 입체적으로 바뀐다. 단순한 텍스트 기사의 양산에서 사진, 비디오, 오디오가 결합된다. CBS 노컷뉴스는 이미 인터넷에 맞는 뉴스를 지향한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전면적 또는 제한적으로 기자들에게 캠코더를 지급, 비디오 임베디드 뉴스를 서비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UCC 채널이 비디오 콘텐츠 구조로 설계되는 동안 시장의 수요 역시 지난해 하반기를 전후로 영상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6백만대 이상이 보급된 DMB, 와이브로 상용화, HSDPA-HSUPA는 뉴스의 포맷을 멀티미디어로 재촉하는 미디어 환경이다.

규모가 작은 매체일수록 영상 서비스는 소수 기자들로 운용되고 있다. 3~5명의 전담 부서가 있고 10~20명의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진부, 문화부, 스포츠부, 사회부 등 생생한 현장장면이 중요한 부서는 뉴스의 다양한 제공방식을 습득하는데 열정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지 못하는 뉴스룸이 존재한다. 기자들은 캠코더 지급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가 하면 영상 뉴스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기회조차 없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 누구나 다 정리한 정보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중앙집중적 뉴스룸만 쳐다 본다. 이에 대해 비판과 의문, 대안이 제기되지 않는다. 따라서 브랜드를 단 모든 콘텐츠의 창조적 스토리텔링에 대해 사전 사후 협의란 없다.



   
 
   
 


 △ 스태프(staff)의 역할 부재

뉴스룸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간부 기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올드미디어의 생태계 속에서 생존법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데는 정서적 이질감을 갖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현재의 브랜드를 축조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함으로써 뉴스룸 내부의 정치적 지분이 있다. 이들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경영자와 ‘선배’ 밖에 없다.

문제는 대다수 시니어 기자들이 뉴스룸 혁신에 대해 철저히 방관자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큰 방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뉴스룸 혁신은 일정한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동안의 공로는 사라질 수 있고, 더 많은 일이 부과되거나 과거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힘들어질 수 있다. 적어도 이러한 업무 정체성의 문제는 스태프들로 하여금 혁신의 무용론, 속도조절론을 주장하게 만들지 모른다.

하지만 뉴스룸 혁신에 동의한 스태프는 가장 선도적으로 뉴스룸의 변화상을 제시하는 ‘주인공’이 된다. 스태프는 후배들을 독려할 것이다. 뉴스룸 통합의 필요성을 설파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스토리텔링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가장 강력한 정보력과 문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들 스태프가 혁신의 그룹이 될수록 뉴스룸은 항상 고무돼 있다.

반면 뉴스룸 혁신이 지체되고 있는 곳에서는 스태프의 영양가는 없는 편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스태프와 함께 일하게 될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들은 자신의 과업보다 현장 기자들을 닥달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뉴스룸의 변화보다는 지금까지 잘해온 것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새로운 것에 눈뜬 기자들은 뉴스룸을 버릴 수밖에 없다.

△ 리더십의 실종, 미흡한 경영전략

뉴스룸이 혁신되려면 결국 좋은 선장을 만나야 한다. 그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이고 단계적인 목표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그는 또 뉴스룸의 변화가 기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를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설득력있게 설명할 것이다. 뉴스룸 혁신은 경영진의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협력해야 할 공적인 가치로 부상하게 된다.

리더는 끊임없이 경영전략을 소개한다. 이때 그 전략은 현장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경쟁매체의 과정을 벤치마킹하고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수립된다. 또한 서로 다른 견해를 수용하는 대화의 시간을 만들고 전략을 보완하며 방법론을 설파한다. 리더는 뉴스룸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고 미디어 그룹을 눈부시게 한다.

그러나 리더십이 불충분하거나 경영전략이 제대로 수립돼 있지 않다면 뉴스룸은 대단히 삭막하고 안전성이 훼손돼 있는 상황일 것이다. 올해 들어 한 신문사의 경우 쟁쟁한 현장기자들이 뉴스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 뉴스룸과 기자의 미래에 대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경쟁적으로 짜놓는 촘촘한 내부 체계들은 ‘사회보장보험’과도 같다.

혁신에 대한 갈망을 가진 리더가 있고 없고에서 그 차이가 결정된다. 혁신되지 않는 뉴스룸에는 선장이 없다. 리더는 ‘매출’목표만 되뇌일 뿐이지, 새로운 시장과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의 밑그림은 결코 제시하지 않는다. 새로운 네트워크에 나서지 않고 과거에 존재했던 행사와 이벤트에만 몰두한다. 신문의 냉혹한 현실을 잘 알면서도 브랜드의 권위만 좇는다.

뉴스룸이 혁신하지 않게 될 때 나타나는 가장 첫 현상은 침묵의 문화이다. 혁신이 공개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면 뉴스룸은 하나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수많은 대화와 토론이 전개된다. 뉴스룸은 늘 들떠 있고 만족의 탄성이 터진다. 혁신하는 뉴스룸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는 단순한 정보(information)가 아니라 작품(a work of art)이기 때문이다.

혁신하는 뉴스룸은 경영진과 일부 선각자들에 의해서 추동돼서는 안된다. 선배, 후배 기자들이 합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의 성과가 일부에만 돌아갈 뿐더라 그 결과물도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끝난다. 뉴스룸의 모든 구성원들이 ‘혁신’으로 똘똘 뭉치지 않으면 마지막이라는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혁신되고 있는 지금 신문, 방송의 뉴스룸과 기자들이 “우리가 가장 늦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허비됐다. 이제부터라도 가야 한다. 혁신의 길에 올라야 한다.

한국경제 미디어연구소 최진순 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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